매일 아침 눈 뜨면 맞이하는 우리집 창 밖 풍경이지만 계절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빛의 변화를 마주하는 것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모습은, 느즈막히 떠오르는 서늘한 계절의 햇살이 잎 떨어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옅게 퍼지는 아련한 시간대의 풍경이다. 이런 순간에 집을 나서면 남들보다 더 긴 주말 하루를 즐긴다는 우쭐함을 만끽할 수 있다.
베이징에서 한국인이 제일 많이 거주하는 지역인 왕징(望京/망경)은 글자 그대로 ‘수도를 바라보다’라는 의미이다. 명(明)나라 시기 이곳에 군사시설인 망경돈(望京墩)을 설치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당시 망경돈에 올라 서쪽을 보면 동즈먼(東直門/동직문)이 보였다고 한다. 동즈먼은 황제가 사는 자금성(고궁)을 중심으로 둘러싼 성문 9개 중 하나로서, 이 성벽 한참 밖에 위치했던 왕징은 그 당시에는 수도 밖 외곽이었던 셈이었을 것이다.
왕징에 살다 보면 왕징소호(SOHO) 건물이 얼마나 생활 속 뿌리내리고 있는지 잘 모를 때가 있다. 베이징 처음 와서 지리가 낯설 때, 멀리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 왕징소호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독특한 외관으로 ‘여기가 너희 집이야’를 외치는 것만 같아 마음이 편하다. 집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배경 속에 왕징소호 건물이 꼭 걸쳐있다. 우리에게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설계자로 잘 알려져있는 유명한 이라크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는 중국 부동산 기업 소호와 손잡고 베이징에 3개, 상하이에 1개 건물을 설계하였다. 그 중 왕징소호는 그녀의 2019년 유작이다.
메이저우동포
眉州东坡
北京市朝阳区广顺南大街望京路10号院6号楼
월~일 06:30~22:00
베이징 시내 여러 지점을 운영하는 식당이지만 나에겐, 우리에겐 그저 집 가까운 동네의 편한 식당 중 하나이다. 6:30 오픈에 맞춰 조식 배달 하려는 플랫폼 배달 오토바이들이 붐비는, 나름 인기 맛집이다. 튀는 것을 좋아하는 중국 스타일답게 호화스러운 외관이지만 착한 가격으로 부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식당 입구에 상세히 안내해 둔 조식 메뉴 사진과 가격 포스터가 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왕징 지역인 만큼 중국 생활과 중국어에 익숙한 사람들부터 방금 온 초보자까지 다양한데, 이 식당은 그들 모두를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었다. 이 식당의 가장 큰 특장점은 직접 보고 직접 고를 수 있다는 것!
입구부터 길게 뻗은 테이블 위에 다양한 조식 메뉴가 따끈따끈 준비되어 있다.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서 계속 세팅 중이다. 가장 먼저 맞이해주는 것은 메이저우동포의 대표 메뉴인 요우티아오(油条)이다. 밀가루 반죽하여 모양내고 기름에 튀겨 건지는 전 과정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30cm 길이를 자랑하는데, 무엇보다 아침 새 기름에 깨끗하게 튀겨내는 과정을 보면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자, 이제 음식 감상 천천히 하며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골라본다. 종업원의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커다랗게 적혀 있는 중국어를 천천히 읽거나 단어 검색해보는 여유도 부려볼 수 있다. 갓 짜내어 따끈한 콩국물 또우장(豆浆)도 내가 직접 원하는 만큼 따라볼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가면 좋은 경험이 될 듯 하다.
煎炸, 굽고 튀긴 종류. 옥수수전, 달걀프라이, 소시지, 파전병, 빵 종류 등이 있다.
粥品, 죽 종류. 호박죽, 좁쌀죽, 녹두죽, 순두부, 배대추은목이탕 등.
蒸点, 찐 음식 종류. 찐빵, 왕만두 등 친숙한 음식들이다.
小菜, 반찬류, 한 접시 2元(약 370원)으로 입맛을 돋군다.
국수류. 주문하면 즉석에서 조리해준다. 만둣국과 탄탄면 두 종류가 있다. 清汤抄手(칭탕차오쇼우)는 중국식의 작은 만두로 끓인 훈툰(馄饨)이고, 担担面(탄탄면)은 사천지방 대표적인 음식으로서 비빔국수이다. 한 그릇에 16元 (약 3000원)
원하는 대로 접시 골라 담고 제일 마지막 계산대로 가면 종업원이 알아서 계산해준다.
이 식당은 메이저우동포 체인점 중 규모가 큰 편인데, 점심이나 저녁에는 단체손님과 연회 예약이 많은 듯했다. 우리에겐 마치 결혼식장이나 회갑연 의자와 테이블 같은 느낌의 식탁에 앉아, 어색하지만 가성비 좋은 조식을 먹는다.
명나라 때 수도를 바라보던 외곽 지역이었던 왕징은 이제 수도공항으로 향하는 길목이자 외국 회사들과 고층 건물들 밀집한 지역이 되었다.
왕징 내에는 크고 작은 공원이 10개가 넘는다는 점이 이 지역의 매력을 한층 업그레이드 해준다. 건조하고 회색톤의 베이징에서 이처럼 공원이 많은 덕에 초록초록메이저우동포에서 두둑히 채운 배로 한 블록 건너면 동네 주민들에게 개방된 편안한 백작성중앙공원(伯爵城中央公园)이 있다. 백작이 거주하는 성이 실제로 있지는 않은 소박한 공원인데 왜 이런 거창한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일주일을 치열하게 보낸 후 맞이하는 주말. 작정하고 대단한 나들이와 핫플레이스 방문하며 보내도 좋지만, 특별한 계획이 없다 하더라도 조금 빨리 눈 떠서 그저 편안한 차림으로 걸어나가 조식 먹고 공원 산책하는 것도 정신적, 심리적으로 기분 좋은 포만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