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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고장 난 수도원에 들어오다

고장 난 시계

by 로로

이 수도원의 시계는 고장 났다. 수도원이 빵의 수익금으로 운영되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가게에서 보낸다. 우리가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간혹 친절한 젊은 청년이 와서 빵을 판매하는 우리보다 더 친절하게 말해주면 함께 수련하는 남편은 혹시 미래시대에서 온 우리 자식 아니냐는 농담을 하곤 했다. 미래에는 타임머신이 잘 발달되어 자기 부모님의 젊은 시절로 올 수도 있을 거란 나름 본인이 즐겨보는 만화의 내용을 떠올린듯했다.



가게에 있으면 많은 다양한 손님을 만나는데 손님들을 통해서도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상상해보곤 했다. 이제 막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을 보며 결혼을 준비하던 우리 모습, 연세가 많으신 노부부가 오셔서 편하게 말을 거시며 이야기하다 가시면 우리의 미래를 떠올려보곤 했다.



첫아이가 태어나 하루하루 지내는 동안은 그동안 내가 잃어버렸던 시간들의 발견이었다. 내 기억에는 전혀 없는 하루하루들을 내가 아기를 키워보며 알게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마치 나의 아기 시절을 직접 눈앞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막연히 부모님한테 받은 사랑, 특별하게 받은 날들에 대한 기억만 있을 뿐.. 몰랐던 사랑이 댐이 넘쳐 물이 퍼붓듯이 부모님의 사랑이 넘쳐 때가 되니 나에게 퍼부어지는 기분이었다. 내 어린 시절을 돌아봤을 땐 귓가에 마 치 웃음소리가 아직도 선명하게 들리는 것처럼 너무 좋은 추억과 기뻤던 마음이 담긴 건 부모님의 고생스러운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인 증거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참으로 잃어버렸던 시간들을 찾아가는 시간인 것 같다.



엄마의 나이가 되면 이 수도원의 고장 난 시계가 제대로 돌아갈 것 같았지만 엄마가 우리를 통해 본인의 젊은 시절 아빠와 나를 돌보던 모습을 우리를 통해 또 보신다고 하셨다. 아마도 이 시계는 내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고장이 나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시계를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다시 나이가 들어 뒤 돌아봤을 때 기뻤던 마음들이 남아있을 수 있도록 수련을 계속해나가야겠다.

이 수도원에서 고장 난 시계를 고치지 않는 것처럼 일어나는 모든 일을 고쳐보려 하기보다 받아들이고 사는 방법을 또 수련해간다.



고장 난 시계가 주는 자유함에 감사

가끔씩 고장 나는 남편을 놀릴 수 있음에 감사

가게가 무사히 끝남에 감사

좋은 손님들과의 만남에 감사

오늘 하루도 건강히 일할수 있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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