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의 운영을 위한 빵집은 두 번 오픈했다.
처음은 이 수도원의 탄생을 만들어준 역 근처였고 두 번째는 수도원의 본격적인 운영을 위한 오픈이었다. 첫 번째 빵가게의 결론은 이익이 아니라 결혼이 되었고 두 번째 빵가게의 결론도 이익보다는 살아가는 삶이 되었다.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시작을 했지만 뜻밖의 결론에 도달했고 이 결론들이 주는 아직은 모르는 인생의 재미가 있는듯하다. 장사를 시작하며 느끼는 장사의 가장 큰 장점은 내일을 알 수 없다는 것 단점도 내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만 잘 마무리했다면 그걸로 끝이다. 더 이상은 생각할 여유도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장사를 하며 큰 수익을 내지는 못했지만 수도원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우리의 부족한 부분과 장점 그리고 재밌는 경험들을 쌓게 되었다.
우리는 코로나가 막 터지기 시작할 무렵에 두 번째 가게를 마무리 지었다. 그때의 기억들을 추억하며 장사의 재미를 기록해보려 한다.
첫 번째 가게는 신도시 역 근처의 월세가 꽤 비쌌던 곳에 위치해 있었다.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의 유동인구가 꽤 되었다. 월세가 비싸지다 보니 빵 가격도 비싸졌고 말 그대로 유동인구는 유동인구가 된다. 일반 회사원들은 애매한 가격에 법카를 쓸 때나 가끔 간식을 먹을 때 주로 왔고 오히려 근처 회사의 사장님들이나 거래처 영업직
직원들의 선물용으로 나갔다. 그래서 단골손님은 적은 편이었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가게의 운영시간이 길어졌고 이때는 우리가 결혼 전이라 남편이 참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한가한 시간 덕에 내 친구까지 이곳에 와서 알바를 하고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어 더욱 친해지는 계기가 된듯하다. 이곳에서는 오히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빵을 많이 팔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만 많을 뿐 과감하게 무언가를 해보진 않았다. 그나마 시도해본 것이 커피였지만 기계로 내리는 커피가 아닌 커피 원액으로 만드는 더치커피라 호불호가 갈렸고 바로 옆에 커피숍이 있어 애매했다.
바로 옆 가게에선 커피숍과 부동산을 함께 하고 있던 사장님이 계셨는데 가게를 내놓기 위해 찾아갔던 남편에게 망해보고 그래야 다음번에 더 잘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망할 정도 까진 다행히 안 갔지만 위험하긴 했다. 첫 번째 가게가 우리에게 준 선물은 높은 월세에 남편은 자신의 부지런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렸고 부족했던 성실함도 최고치로 채워지며
그 와중에 나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는 에너지를 주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계약기간을 모두 버티긴 힘들었을 텐데 우리는 다행히 가게를 보고 인테리어를 마음에 들어 하게 된 젊은 사장님에게 넘겨줄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가게를 할 곳을 찾아 출퇴근이 가능할만한 거리의 웬만한 곳은 모두 찾아다녔다. 이전에 너무 힘들었던 월세로 인해 두 번째는 무조건 적당한 또는 저렴한 월세를 찾아다녔고 마침내 처음 가게에서 십오 분 정도 거리의 사거리에서 두 번째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다. 이곳은 아파트 단지와 주택단지를 끼고 있는 대로변이라 손님층이 확실히 달랐다. 동네분들이 사랑방 오듯이 오셔서 가족 이야기 일상 이야기 안부를 묻고 피드백도 주시며 지내게 되다 보니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들어버렸다. 이곳이 내 기억 속에 특별히 남는 이유는 빵이 없는 빵집이란 소리를 들어서였다. 월세가 적당 해지다 보니 지치지 않기 위해 하루 적당량만 판매했고 그날 만든 빵을 모두 판매하면 시간에 관계없이 문을 닫았다.
처음엔 오픈 발이라 두 달 정도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신기하게도 가게가 마무리될 때까지 많은 날들을 완판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모두 판매하지 못하는 날엔 다음날 오전까지 할인을 해서 팔기도 했다. 빵을 많이 팔아야겠다는 생각보다 그날 만든 적당량의 빵을 신선할 때만 팔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바꾸고 보니 오히려 빵이 더 팔렸었다.
가게를 오픈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나이가 좀 있어 보이시는 손님이 오셔서 가게 인테리어가 마음에 안 든다고 이러면 아파트값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하여 그저 웃기만 했다. 그때 다른 손님 한분이 들어오셨고 우리가 대답을 못하고 웃고만 있자 새로 들어온 손님에게 여기 인테리어가 마음에 드냐고 물으셨고 그 손님은 마음에 든다고 대답했다. 원하던 대답이 아니셔서 인지 당황하시며 한 번 더 그분에게 여기 사시는 분 맞냐고 물어보셨다. 그분은 맨 뒤쪽 단지에 사신다고 했고 그 단지는 우리가 알기로는 제일 좋은 단지였다. 뜻밖에 다른 손님이 와서 우리 대신 대답을 모두 해주자 그분은 나는 인테리어 바꾸기 전에는 잘 이용을 안 할 것 같다며 나가셨다. 그래도 우리 대신 대답해주시던 손님이 웃으시며 여기 빵이 맛있다고 얘기해주시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동네분들이 신기하게도 다 좋으셨다. 아는 사람이 개업한 것처럼 여기 위치가 애매해서 가게가 자주 바뀐다고 걱정돼서 사러 와주셨다고 하는 분들도 많이 계셨고 자녀분이 외국에 계셔서 자녀 나이 또래의 우리를 보고 더욱 자주와 주시던 어르신까지 참 감사하기도 신기하기도 한 곳이었다. 마지막 남은 빵이 원하던 빵이 아니어도 이거 다 팔리면 퇴근하시는 거냐고 물어보시고 다 달라고 하시던 손님들도 계셨다. 우리가 모자란 부분들을 손님들이 많이 이해해주시고 와주셔서 빵 없는 빵집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장사는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빵집은 농사짓는 것과 많이 비슷했다. 아침 일찍 빵을 만들고 손님들이 사가고 적절한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고 오후 늦게 빵이 모두 팔릴 때까지 열심히 순리대로 일하다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농사하며 겪는 일 년 치를 매일 짧게 겪는다고 생각이 들곤 했다. 장사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이득은 돈 보다는 순리대로 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