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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고장 난 수도원에 들어오다

수도원이 무너지다.

by 로로 Aug 29. 2022

인생이 여행으로 많이 비유되고 나도 이 비유가 좋다. 우린 함께 하기 시작한 여행길에서 수도원을 세웠다.  우린 다음 여정을 위해 제과점을 먼저 정리하기로 했다. 제과점을 정리하고 나니 남는 건 시간이었다. 임신기간, 그동안 못했던 멍 때리기를 실컫하였다.  멍 때리는 것은 꽤 도움이 된다.

갑작스러운 코로나가 시작되는 시기에 첫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됐고 우리는 이 기간 동안 사자의 탈을 쓴 나귀처럼 코로나의 탈을 쓰고 집돌이 집순이 생활을 즐겼다.  



신혼 때 더욱 서로를 알아가는 시기에 장사를 하며 수도원 생활을 하느라 못 나누었던 대화들을 하나씩 풀어가니 생각보다 합의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코시국에 병원을 다니다 보니 마스크는 필수였고 마스크에 모자를 즐겨 쓰는 내성 격상 정기검진을 가면 늘 의사와 간호사는 내 눈만 볼 뿐이었다.

나는 병원 공포증이 있어 병원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싶어 늘 검진을 오면 궁금한 질문도 없이 아기만 잘 있으면 감사합니다 하며 나오기 바빴고 이런 내 캐릭터를 아시고 담당의사는 궁금함을 참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임신 막바지의 정기검진을 하게 된 어느 날 더 이상은 궁금증을 못 참으셨는지 나에게 남편과 나이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를 물으셨다. 그동안 남편과 제과점을 다고 얘기한 것 말고는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 나도 당황스러웠지만 한번 수다가 시작되면 또 신나게 얘기하는 성격이라 대답을 한참 했더니 웃으셨다.  담당의사 선생님도 여자여서 더 궁금하셨던 것 같다. 소녀감성을 가지신 것 같았다.  

우리 집 가족 관계가 제가 늦둥이다 보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 오빠와 지냈다.  그래서 언니와 오빠가 이 사람보다도 나이가 많다.  가정환경 탓인지 나이차가 많이 나도 어딘가 자연스러워진 게 아닌가 생각하지만 나도 의문이라고 대답했다.  



임신 초기에 병원 공포증이 있는 나보다 더 떨려서 과호흡이 왔다며 말도 못 했던 이 사람을 보면 딱히 나이 차이가 나는 걸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임신기간이 잘 마무리돼가던 정기검진 날 막달 검사 피검사 수치가 좋지 않아 응급으로 제왕절개를 하며 첫 아이를 낳게 됐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은 의사 총파업의 날이어서 내가 다니던 대학병원의 인턴들과 의사들이 꽤 대모에 나갔다. 코시국에 총파업 날 아기를 출산하게 되니 전쟁통이 따로 없는듯했다. 

안 그래도 병원 공포증이 있는 나에겐 환장할뻔한 날로 기억된다.  인턴이 없다 보니 의사가 수술할 때 보조해주는 사람들이 부족했고 내 자료를 찾고 마취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수술실의 차가움 때문인지 긴장인지 몸이 바들바들 떨리자 마취과 선생님께서 긴장을 풀게 해 주시려고 그러신 지 의사 총파업 날 태어난 아기니까 얘는 의사 해야 한다며 덕담도 해주셨다. 그렇게 아기는 큰일 없이 태어났고 정말 2530g의  인큐베이터의 기준 2.5 키로를 갓 넘겨 잘 나와주었다.  

응급수술을 마치고 입원실로 올라가니 특실이었다. 순간 감동이 밀려왔지만 사람이 쉽게 변할 리가 없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응급이라 어쩔 수 없이 잡은 거지 자신의 의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참 솔직한 편이다.  어쨌든 특실은 감사했다.  이 감사함의 크기만 한 고통이 다음날 기다린다는 건 모르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간호과에서 나와 특실을 계속 쓸게 아니라면 비워줘야 한다고 하셨고 난 어제 오후 늦게 수술해서 못 움직이니 침대로 옮겨주면 안 되냐 했지만 그렇게 까지는 못해준다고 했다. 남편한테 업힐 수도 안길수도 없는 상태였다. 어차피  수술 다음날은 조금씩 서보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지만 이건 내 회복 속도와는 달리 무리를 해서 일반실까지 가야 되는 상황이었다. 남편도 옆에 있지만 도와주질 못하니 미안해했고 난 어머님께서 자주 쓰시는 환장 하겠네라는 말을 계속하며 이동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둘이 떠났던 집을 셋이 돌아와서 지내던 어느 날 금이 가고 있던 수도원이 무너졌다. 우리는 급하게 고장 난 시계와 그동안의 수련법이 담긴 책만 챙겨 들고 수련원을 나오게 됐다.

다음 여정이 시작되며  우린 또 어디쯤에서 수도원을 세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즐겁게 가기로 마음먹으며 조금은 더 단단해진 우리를 느꼈다.


수도원을 통해 감사노트를 시작하게 됨에 감사

때론 더욱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다 포기해봄에 감사

서로 용서할 수 있어서 감사

다음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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