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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A-PPA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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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b Aug 19. 2024

A-PPA #1 [악수]

연예인이고, 정치인이고,

악수(握手)하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저릿저릿해진다.

악수는 내가 가장 사랑했고, 가장 미워했던 한 남자와의 특별하고도 유일한 스킨십이었기 때문이다.


172cm.

아담한 키에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다부진 체격의 사나이.

경상도 산골짜기 깡촌에서 5형제 맏이로 태어나 가진 것 하나 없이 맨주먹으로 집도 사고, 땅도 사고, 밭도 사고, 논도 산 강철 같은 사람.

마지막 순간까지 두 눈에 담긴 불꽃은 차마 꺼지지도 사그라지지도 않았던 산 호랑이.

아빠, 나의 아버지.


나에게 아버지는 장롱 위, 천장 아래에 놓인 ‘어떤 상자’와 같았다. 올려다보면 딱 한 면만이 보이고, 힘껏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아버지는 스킨십에 인색했다. 나도 나지만 어린 동생들도 안아주거나 쓰다듬어주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눈을 잘 바라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눈 속엔 늘 노란 심지의 불꽃이 일렁였는데, 눈을 마주치면 불꽃이 튀어나와 나를 살라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 전할 말이 있으면 어머니를 통해 전했고, 대답도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들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불쑥 손을 내밀었다. 내가 19세 되던 해, 수능 시험장 앞에서였다.


“시험 잘 봐래이.”


첫 악수. 그렇게 악수의 역사가 시작됐다.


나는 비록 SKY 입성엔 실패했지만, 아버지가 3지망으로 지원한 대학과 학과에 합격했고 그 공로로 고향집에 내려갈 때마다 아버지와 악수로 인사를 하게 됐다. 맞잡은 두 손바닥 사이엔 기쁨과 보람, 자랑스러움 같은 것이 뚝뚝 흘러내렸다. 어린 동생들은 그 모습을 말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귀하디 귀한 스킨십, 악수의 맥이 맥없이 끊어진 것은 내가 대기업에 취직하지 않으면서다.

(* 나는 대기업 취업 준비를 일절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선택한 전공 – 중국어 – 수업을 들으며 평균 B에 해당하는 성적을 유지하는 것과 가고 싶지 않았던 중국으로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은 말 그대로 고역이었다. 대입이야 다 똑같이 하는 공부이니 꾸역꾸역 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은 차원이 달랐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 인생을 내 뜻대로 만들어갈 수 없음에 날이 갈수록 부아가 치밀었다. 평생 먹고 살 직업만큼은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결심으로 나는 끝내 기자가 되었고 아버지는 첫 월급 급여명세서에 찍힌 보잘것없는 숫자에 기가 찬다는 실소를 터뜨렸다.


나는 나대로 살아도

아니, 나대로 살아서

아버지의 악수를 다시 회복하는 그날을 꿈꿨다.


아버지표 내비게이션에서 이탈한 나는 내 가슴속 나침반 하나만 바라보며 돌밭, 생경한 길, 낮은 곳, 볕이 들지 않아 축축한 땅도 묵묵히 걷고 또 걸었다.

악수를 회복하는 그날이 다가오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단단해지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러던 중 강철 같은 사나이, 산 호랑이가 쓰러졌다.

담도암이었다.


암 절제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혈액 속을 떠돌던 암세포는 기어이 폐로 전이됐다. 폐 전이 후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됐고 아버지의 단단했던 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걸을 힘이 없어 휠체어에 앉게 됐고, 숨쉬기가 어려워 호흡기를 달게 됐다.

무언가를 삼키기도 어려워진 아버지 앞에서, 동생들은 자지러지게 우는데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 세계에 반드시 존재해야 했으니까, 내가 악수의 맥을 다시 끌어오는 그날까지 말이다.


끝내 호흡과 맥박이 무너지는 순간을 맞았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왼손을 쥐어짜듯 붙잡고 있었다.

아버지의 심장은 세차게 요동치다 한없이 느려지고 다시 세차게 요동치다 한없이 느려지더니 다시 뛰지 않고 영영히 서버렸다. 의사는 우는 가족들 사이에서 꼿꼿이 사망선고를 내렸다.


실신 직전의 어머니를 부축한 동생과 친척들이 모두 병실을 나가고 아버지와 나, 단둘만 남았다.

나는 여전히도 아버지의 왼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을 가만 바라보았다. 이렇게 작았던가.

어느새 붉은 기가 사라진 아버지의 손은 너무도 낯선 노란색이었다.


“아빠, 나는… 나는 이 악수가 그렇게도 그리웠어요...”


맞잡은 손 위로 머리를 포갰다. 쏟아지는 눈물이 두 손바닥 사이로 흘러내렸다. 한번도 만져본 적 없는 아버지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빗질하듯 쓸어내렸다. 가죽만 남은 아버지의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싸 쥐어도 봤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아버지의 가슴팍에 가만 귀를 대고도 있었다. 눈물은 강물이 되어 아버지의 병실 천장 끝까지 차올랐다.


나는 마지막으로 악수가 아닌 - 의기투합하는 제스처 - 팔씨름하는 모양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악수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나는 다시 볕이 들지 않아 축축한 땅으로 돌아간다.

그 다음 펼쳐질 땅이 잡초 밭일지 모래밭일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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