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 좋은 날

꽉 막힌 내 삶에 활주로가 뚫리려나보다

by 펭귀니

입원 35일 차


매일 아침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 5시쯤 눈이 떠졌다. 왼팔이 저리고 시큰거리지만 참을 만하다. 스트레칭을 해보니 가동범위도 예전에 비해 잘 나온다. 2주 정도 입원하려 했지만 벌써 한 달이 훌쩍 넘었다. 괜찮아진다 싶으면 새로운 곳이 아파와서 집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자꾸 길어지는 입원생활로 병원직원분들뿐만 아니라 같은 병동 환자분들도 한마음으로 걱정해 주셨다.


"집에 가서 사람구실 못 할 거면 제대로 치료받고 가는 게 나아요."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람 구실 못하는 내 모습이 비참해서 억장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점점 늘어가는 병원비도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2009년에 가입해 둔 실비보험 덕분에 조금은 마음 놓을 수 있었지만 돈은 참 어렵다.


'돈 쓰면서 아픈 사람 말고 돈 벌면서 아픈 사람이 되고 싶어.'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의료진들을 볼 때면 종종 서글픈 마음이 들곤 했다. 첫 직업이 간호사였으니 열정적으로 일했던 시절의 내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다. 입원 중에 내가 간호사로 일했던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미 오랜 기간 쉬어버린 탓에 경력단절이 오래되었고 무엇보다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는 편이 환자인 나를 위해 도움 되는 선택이라 생각했기에.


철저히 숨기려 했지만 브런치메인에 내 글이 떡상하던 날 나도 모르게 병동간호사선생님 한 분께 자랑을 해버렸다. 계정을 알려달라 하셔서 말씀드렸는데 아마 내 브런치계정을 확인하셨다면 간호사면허증을 보유한 사람이라는 걸 아실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그저 이곳에서 환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 다만 '난 참 구멍이 많은 허술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삶은 예상하기 힘들다. 내 나이 36세. 건강에는 자신 있었기에 이렇게나 빨리 아플 줄 몰랐다. 21살. 영영 아플 일 없을 줄 알았을 때 가입해 둔 실비보험이 이토록 유용할 줄 몰랐다. 내가 간호사라는 사실을 끝까지 함구하려 했지만 '브런치메인떡상'이라는 우연히 만난 행복 앞에서 어이없을 정도로 허술하게 새어 나오고 말았다.


예상하기 힘든 게 삶이기에 문제없는 인생은 없다. 문제를 만났다면 해결하면 된다. 아프고 나서 가입해 둔 실비보험 약관을 꼼꼼히 읽고 공부했다. 그 덕에 효율적으로 치료비를 사용하도록 계획할 수 있었다. 입원기간 글쓰기로 마음을 다스린 덕분에 브런치메인에 글이 소개되는 영광도 누렸다.


신경유착으로 막힌 왼팔의 통로가 뚫리기 시작하니 자신감이 피어오른다.


'상담사이든 간호사이든 상관없어. 언젠가 회복되면 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브런치가 나를 인정했잖아. 그저 지금은 떳떳한 엄마로 살 수 있도록 치료에 집중하자.'


'환자로 입원해 본 경험은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큰 자산이 될 거야. 잘 극복해서 이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가자.'


왼팔의 통로가 뚫리기 시작하니 답답했던 내 마음도 뚫리기 시작한다. 매일이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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