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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May 28. 2024

쓰레기

길바닥의 쓰레기를 줍다 떠올린 생각들

도서관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집 앞 편의점 벤치 부근에 쓰레기가 마구 널브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누군가 편의점에서 다 같이 뭐 사먹고 대충 길바닥에 버려놓은 건데, 그 근방에 제대로 된 쓰레기통이 없어 버리려면 다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는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니 길바닥에 버리고 가는 게 제일 “효율적"이었을 거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가,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고는 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떠올라 다시 발걸음을 돌려 쪼그려 앉아 쓰레기를 주웠다. 다른 한 손에 뭘 들고 있던 탓에 다 줍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한 손에 가득 쥔 채 마땅히 근처에 버릴 곳이 없어서 아파트 현관 앞 분리수거함까지 가지고 갔다. 그 와중에 음식들이 손에 묻기까지 해서 괜히 주웠나 싶었는데, 그래도 오타니 말대로 다른 사람이 버린 운을 줍는다고, 반쯤 정신승리할 수밖에.


쓰레기 문제는 내가 그동안 공부해 온 수많은 환경과 지속가능성 관련 이슈 중 하나였지만, 미국에서의 생활동안 가장 큰 괴리감을 느낀 부분이 바로 사람들이 쓰레기를 정말 막 버린다는 거였다. 이전에 갔을 때도 느꼈지만 그때는 짧은 순간의 충격에 불과했다면 이번에는 그런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 점점 동화되어 갔다. 학교 곳곳에 쓰레기통이 많아서 길거리에다가 쓰레기를 버릴 일은 없지만,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분리수거의 개념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지난번에 시현이가 뉴욕 여행 때 말한 “군대에서 우리가 제아무리 쎄빠지게 페트병 라벨 뜯고 분리수거해 봤자 지구 반대편에서 훨씬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버려대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하는 말을 떠올린다. 사실 폐기물 처리는 좀 더 지역적인 이슈라 그런 게 의미가 아예 없지는 않겠다만, 쓰레기 외의 것들에 있어 통일성이나 협동성 없는 지속가능성에 관한 노력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지속 가능성과 환경이라는 이슈에 대해 공부하면서 무언가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알기보다는 이게 해결 가능한 문제인지에 관한 회의주의적 태도만 강해진다. 어렸을 때는 물 아끼고, 안 쓰는 등을 잘 끄기만 하면 북극곰의 서식지를 지킬 수 있다는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실천 방안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면,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한 가지로 수렴하는 근본적인 해결책 따위는 없다는 확신이 생긴다. 예전에는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쓰레기를 주웠다면, 이제는 그냥 눈앞에 있는 쓰레기가 길을 좀 더 깨끗하게 보이게 하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걸 안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다면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에게 쓰레기를 막 버리지 말라할 게 아니라, 쓰레기가 되는 물건에 대한 소비 자체를 줄이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나의 행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닌, 보이지 않는 곳으로 문제를 전이하는 또 다른 행위에 불과했다.


내가 요즘 느끼는 지속가능성한 사회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는 현대 사회 안에서의 인간의 본성과 그걸 둘러싼 시스템의 본질에 대한 고찰로부터 비롯됐다. 양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당장의 비용은 미래 혹은 만만한 다른 곳에 떠넘기는 구조, 그중 가장 회의감을 들게 하는 건 그런 세상에 대한 불안과 모순되게 너무나도 잘 적응한 채 살아가는 나의 행동양식 그 자체다. 타자에 대한 착취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의 구조에서 혜택 받고 사는, 동시에 착취의 대상이 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호작용에 대해 비판하지만, 거기에 너무나도 잘 길들여진 스스로의 위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복잡한 문제들의 실타래를 조금이라도 풀어내기 위해서는 그럼에도 그 위선에 다가가야 한다.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량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넘어 우리가 당연시하며 살아왔던 행동이나 생활양식을 재구성하고, 인간과 인간 외 자연과의 기존의 착취적, 파괴적 관계를 재정립하며, 변화하는 시대에서 인간의 역할과 가치를 재고하는 등 수많은 기술적, 사회적, 철학적 이슈를 포괄한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라면 그것이야말로 서로 복잡하게 묶인 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묶음들을 풀 매듭들을 찾아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줍는 그런 행동은 비록 거시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지 몰라도, 그동안 오랫동안 관철해 온 문제의식을 유지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나에게 그럴듯한 의미가 있었다. 때론 행동이 가져다주는 결과보다, 그 안에 깃든 마음이 더 중요할 때도 있는데, 내가 주워서 버린 쓰레기에도 그런 마음들이 담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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