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5개월 차의 기록
[뜻밖의 주문]
친구와 즐거운 여행을 했던 날이었다. 커피를 참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그날도 우리는 커피가 맛있는 카페를 찾아다녔다.
"나 커피 드리퍼 만들어줘. 주문 제작이니깐 청구해."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데 나 그거 뭔지 잘 모르는데... 우선 해볼게. 대신 오래 걸릴 수도 있어."
원통형 기물 뽑기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커피 드리퍼라니. 물론 외형은 본 적도 있고 브런치나 커피 관련 일러스트 그릴 때 그림으론 그려봤지만 내가 사용해 본 적도, 안을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이럴 땐 역시 SOS다.
"선생님! 친구가 커피 드리퍼를 이야기하던데, 제 실력이면 언제쯤이면 가능할까요?"
"오늘이요! 지금 바로 만들어 보면 되죠."
역시 호탕한 우리 선생님.
[내가 만들 수 있을까?]
원통형을 고깔모양으로 응용하고 바닥의 두께까지 생각해서 흙을 물레에서 떼어냈다. 기왕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하나 만들었으니, 하나는 오롯이 내 힘으로 여분을 만들어 봤다. 도자기의 특성상, 과정 중에 깨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지금 와서 사진으로 보니 선생님의 손이 닿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모양과 두께까지 모두 달랐다.
며칠 동안 이 흙덩이를 말린 후 굽을 깎으면서, 커피 드리퍼의 안을 본 적 없는 나는 화분 구멍만 하게 구멍을 뚫고 말았다. 선생님이 굽 깎는 시범도 먼저 보여주셨는데도 멍 때리다 보니 이런 참담한 결과를.
하지만 어차피 커피 필터가 있으니 상관없을 것이라는 선생님의 위로에 손잡이까지 붙여 기물 성형까지 완료.
바르는 유약이 아닌 담그는 유약이 궁금하여 2개를 구매했는데, 그걸 여기에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내가 처음 구매한 담금유. 과연 이 두 개가 예쁘게 어우러질까?
처음 발라보는 매트한 유약이라 손잡이 같은 곳이 아쉽게 발리기도 했지만, 하나는 나름 뭉치지 않고 성공한 느낌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가마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가마에서 나온 커피 드리퍼]
역시 처음부터 두 개를 만들기 잘했다. 물론 더 예쁘게 나온 것이 친구의 몫이다.
투톤이 오히려 특색도 있고 나쁘지 않은 선택인 듯하다.
그렇게 친구에게 전달된 커피 드리퍼.
물건의 안부가 궁금해져 슬쩍 물어봐도 다른 소식만 전해 질 뿐이었다.
내가 만든 것이라 멋쩍어 더 이상 묻지도 못한 채로 시간만 흐르던 어느 날 도자기 선생님이 물으셨다.
“그때 그 드리퍼, 친구가 잘 쓰고 있대요?”
슬쩍 물어봤는데, 자꾸 다른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웃으며 답했지만 나도 궁금하긴 했다.
내가 만든 물건이 잘 쓰이고 있는지보다, 잘 지내고 있는지가.
그때 선생님이 덧붙였다.
원래 드리퍼 안에는 선도 긋고, 구조를 조금 더 잡아줘야 했다고. 종이 필터를 쓰니 크게 상관은 없을 거라 하셨지만, 제대로 만들지 못해 어디선가 자리만 차지하고 있지는 않을지 마음이 쓰였다. 써보지 않은 물건을 만드는 건 역시 내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안부]
그 드리퍼는 한 번이라도 본인의 역할인 커피를 내려보았을까.
같은 날, 같은 흙으로 태어난 또 하나의 드리퍼는 지금 우리 집에서 화분이 되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으로 쓰이느냐보다 어떻게든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마음을 놓이게 한다.
커피드리퍼로는 실패지만, 컬러의 배색은 귀엽지 않냐며 내 흙덩이에게 넌 예쁘다며 늘 가스라이팅을 해오고 있다.
그래도 문득문득 떠난 흙덩이도 궁금해진다.
이상하게도, 쓰이고 있는 쪽보다 소식이 없는 쪽이 더 마음에 남는다. 굳이 커피가 아니어도 좋으니, 자신만의 자리를 찾았기를 바랄 뿐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
이럴 때만 선조들의 지혜를 슬쩍 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