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너는 잘 지내고 있니?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도자기 5개월 차의 기록

by 또록



[뜻밖의 주문]


친구와 즐거운 여행을 했던 날이었다. 커피를 참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그날도 우리는 커피가 맛있는 카페를 찾아다녔다.


"나 커피 드리퍼 만들어줘. 주문 제작이니깐 청구해."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데 나 그거 뭔지 잘 모르는데... 우선 해볼게. 대신 오래 걸릴 수도 있어."



원통형 기물 뽑기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커피 드리퍼라니. 물론 외형은 본 적도 있고 브런치나 커피 관련 일러스트 그릴 때 그림으론 그려봤지만 내가 사용해 본 적도, 안을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이럴 땐 역시 SOS다.


"선생님! 친구가 커피 드리퍼를 이야기하던데, 제 실력이면 언제쯤이면 가능할까요?"


"오늘이요! 지금 바로 만들어 보면 되죠."


역시 호탕한 우리 선생님.



< 겨우 흉내내기에 성공한 커피드리퍼>


[내가 만들 수 있을까?]


원통형을 고깔모양으로 응용하고 바닥의 두께까지 생각해서 흙을 물레에서 떼어냈다. 기왕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하나 만들었으니, 하나는 오롯이 내 힘으로 여분을 만들어 봤다. 도자기의 특성상, 과정 중에 깨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지금 와서 사진으로 보니 선생님의 손이 닿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모양과 두께까지 모두 달랐다.



< 커피 드리퍼의 구멍 실수 >


며칠 동안 이 흙덩이를 말린 후 굽을 깎으면서, 커피 드리퍼의 안을 본 적 없는 나는 화분 구멍만 하게 구멍을 뚫고 말았다. 선생님이 굽 깎는 시범도 먼저 보여주셨는데도 멍 때리다 보니 이런 참담한 결과를.

하지만 어차피 커피 필터가 있으니 상관없을 것이라는 선생님의 위로에 손잡이까지 붙여 기물 성형까지 완료.



<왼쪽 : 처음 해 본 유약풀기 / 오른쪽 : 투톤으로 작업한 유약>



바르는 유약이 아닌 담그는 유약이 궁금하여 2개를 구매했는데, 그걸 여기에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내가 처음 구매한 담금유. 과연 이 두 개가 예쁘게 어우러질까?

처음 발라보는 매트한 유약이라 손잡이 같은 곳이 아쉽게 발리기도 했지만, 하나는 나름 뭉치지 않고 성공한 느낌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가마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위는 세미매트 버터, 아래는 세미매트 그레이 컬러다>



[가마에서 나온 커피 드리퍼]


역시 처음부터 두 개를 만들기 잘했다. 물론 더 예쁘게 나온 것이 친구의 몫이다.

투톤이 오히려 특색도 있고 나쁘지 않은 선택인 듯하다.

그렇게 친구에게 전달된 커피 드리퍼.


물건의 안부가 궁금해져 슬쩍 물어봐도 다른 소식만 전해 질 뿐이었다.

내가 만든 것이라 멋쩍어 더 이상 묻지도 못한 채로 시간만 흐르던 어느 날 도자기 선생님이 물으셨다.


“그때 그 드리퍼, 친구가 잘 쓰고 있대요?”


슬쩍 물어봤는데, 자꾸 다른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웃으며 답했지만 나도 궁금하긴 했다.

내가 만든 물건이 잘 쓰이고 있는지보다, 잘 지내고 있는지가.


그때 선생님이 덧붙였다.

원래 드리퍼 안에는 선도 긋고, 구조를 조금 더 잡아줘야 했다고. 종이 필터를 쓰니 크게 상관은 없을 거라 하셨지만, 제대로 만들지 못해 어디선가 자리만 차지하고 있지는 않을지 마음이 쓰였다. 써보지 않은 물건을 만드는 건 역시 내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안부]


그 드리퍼는 한 번이라도 본인의 역할인 커피를 내려보았을까.

같은 날, 같은 흙으로 태어난 또 하나의 드리퍼는 지금 우리 집에서 화분이 되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남은 하나 드리퍼는 화분으로 활용 중>



무엇으로 쓰이느냐보다 어떻게든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마음을 놓이게 한다.

커피드리퍼로는 실패지만, 컬러의 배색은 귀엽지 않냐며 내 흙덩이에게 넌 예쁘다며 늘 가스라이팅을 해오고 있다.



그래도 문득문득 떠난 흙덩이도 궁금해진다.

이상하게도, 쓰이고 있는 쪽보다 소식이 없는 쪽이 더 마음에 남는다. 굳이 커피가 아니어도 좋으니, 자신만의 자리를 찾았기를 바랄 뿐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

이럴 때만 선조들의 지혜를 슬쩍 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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