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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순이 Jan 31. 2023

새롬 씨, 첫 제목을 입력하세요.

하찮은 사랑 이야기

새롬씨처럼 온몸으로 사랑을 계속 계속 말하는데도 닿지 않는 사랑이라면 이제 그만 지켜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충분한 매일을 보내셔요. 불충분한 사랑으로 잠을 못 이루기엔 새롬씨에겐 전해지려는 큰 사랑들이 많습니다. 줄 수 있을 만큼만 베풀고 받는 만큼만 애정을 주세요. 새롬씨 진심이 닿지 않는 사람들에겐 어려우시더라도 눈길을 거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새롬씨가 매일 충분한 사랑을 느끼며 완전한 꿈을 꾸길 바랍니다. 즐거운 성탄절 보내시기를.



하필 크리스마스 전날 이 메일을 열어보다니. 생에 매 순간이 후회라지만 어김없이 오늘도 나는 후회할 짓을 하는구나 싶었다. 나를 위하는 말들이었다. 세 페이지나 되는 나의 정서적 불안감과 긴 불면에 대한 결과 상담지엔 전문적인 용어들과 기록적인 숫자들이 가득했고 수치와 빨간 강조 그래프만이 지금의 나를 대변했다. 대략 어느 정돈 가늠을 하고 있던 터라 그 세장은 너끈히 넘겼는데 마지막 덧붙여주신 이내 말들이 사무쳤다.


온몸으로 사랑을 말한다. 불충분한 사랑을 느끼기엔 전해지려는 큰 사랑이 많다. 받는 만큼만 애정을 주어라. 눈길을 거두어라. 완전한 꿈을 꾸길 바란다. 충분한 사랑. 그리고 즐거운 성탄절을 보내라니.

맘 저리는 다정한 충고였고, 간절한 청탁이었으며, 백설기 같은 꾸지람이었다.


나는 본래 성탄절을 싫어하는데 크리스마스가 너무 미웠는데 메일을 보고는 내일 하루는 어떻게든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 전해주신 다른 말들은 아직 지킬 수 없을 것 같아서, 왠지 하나라도 말을 듣고 싶어서 괜히 핸드폰을 뒤적였다. 즐거운 성탄절을 검색해 보기도 했고 잘 듣지 않는 캐럴도 찾아봤다. 이러면 즐거운 성탄절이 되나? 이거면 되나? 멋쩍은 뒤통수만 긁으며 괜한 짓을 부러 했다. 그러면서 속으론 '저도 그러고 싶은데 잘 안 돼요. 사실 가끔은 세상에 사랑이 전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내 맘대로 되지도 않으면서 속만 아주 태우는 게 잠도 안재우는 게 정말 딱 질색이에요.' 입술을 샐쭉 될 뿐.


하찮은 사랑 하나에 너무 많은 품을 들이고 있는 내가, 나도 자주 싫다. 그깟 사랑 따위에 여러 말을 덧붙이는 것도 이제는 지겹고 별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사랑들을 겪었고, 그 순간들을 기록해 왔다. 이곳에도 제일 많이 드러낼 하찮은 사랑 이야기들에 어떤 제목들을 붙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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