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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순이 Feb 03. 2023

괜찮아. 전화해. 계속 이렇게 잠이 안 오면 전화 줘.

괜찮으니까 나한테 전화 줘. 전화해 줘 새롬아.

주말마다 바빴다. 등산도 캠핑도, 가족과의 식사도, 애인과의 점심도 하나 빠짐없이 해내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 "주말보다 나는 평일에 쉬는 게 편해. 너만 괜찮다면 나는 오늘 안 만나도 돼~~~ 나 지금 소파에 붙어있어서 뭐가 소파고 뭐가 내 몸뚱인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오지 마 안 와도 나 사랑하는 거 알아~~~"

라고 수화기에 대고 나의 입은 바쁘게 움직였으나 그런 그는 주말 점심엔 늘 1시 40분쯤. 밤에는 10시 17분쯤 우리 집 앞으로 차를 세웠다. 운전석 옆 음료 거치대에 꽂혀있던 커피며 박카스 같은 것들도 그의 피로감에 도움이 되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러다 곁에 앉아 손을 잡아주면 그제야 "생각보다 차가 안 밀렸어. 금방 왔어. 하나도 안 피곤 해"라고 말해주던 그를 볼 때면, 어느 때엔, 내가 지닌 세상 전부로 향한 불안보다 이 친구가 나 하나에 둔 불안이 어쩌면 더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그는 그렇게 본인의 사력과 행동으로 자신의 불안을 잠식시켰고, 안도감을 눈에 담았다. 본인의 안위를 위한 몇 가지의 방식이었고 나 역시 그런 순간들마다 그를 더 밝게 맞아주었다. 사실 그의 불안엔 나의 명확성이 없어서였음이 분명했기에. 그의 불안은 나의 애매모호함과 모순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에서 파생했음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저 옆자리에 앉아 나의 오늘과 지난 평일을 쫑알대주고 손을 겹쳐주는 일 말곤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한 시간쯤 후 코너를 돌아 사라지는 차 뒤에 대고 차 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인사를 해주는 일. 그거 말곤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사랑의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이해해 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이따금 이해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것.

그 시기에, 그에게 나는 그걸 배웠던 것 같다. 몇 번의 시도에도 '절대 이해 못 해'의 순간도 있었으나 잦게는 '오~ 어떤 느낌인진 알겠다!'가 주로 이뤘던 걸로 미뤄보아 아주 사랑의 성장기였다.


틈나는 시간마다 잠만 자던 내가 여러 가지 이유로 불면을 갖게 되었을 때도 나는 자주 슬퍼했다. 표면적으론 잠을 자지 못함에 대한 슬픔으로 느낄 수 있었으나 그에게도 나에게도 숨겨진 이유가 단순하지 않음을 알았기에. 더 슬퍼했다. 잠이 안 오는 새벽마다 나는 주로 걸었고, 걸었고, 걸었으며 또 걸었다. 그는 가끔(내가 부담스럽지 않게) 내게 어디를 걷고 있냐며 통화가 가능하냐 문자로 물었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걸었다. 주변의 재밌었던 이야기들과 어제 본 동영상 속 이야기, 매일 겪는 날씨에 대한 이야기와 유행하는 심리테스트들을 주로 하며 일부러 시시껄렁하게 서로의 새벽을 축냈다. 그러다 드디어 전화를 끊을 때마다 그는 내게 늘 말했다.


"괜찮아. 전화해, 계속 이렇게 잠이 안 오면 전화 줘. 괜찮으니까 나한테 전화 줘. 전화해 줘 새롬아."


 사랑의 성장기에 얻은 깨달음들은 애인 말고도 어쩌다 가까이 지내고 싶은 사람들을 발견이라도 하게 되어도 쓰임이 용이했다.

 인간관계를 늘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주였으나 어쩌다 곁을 내주고 싶은 사람이라도 발견할 때면 그때마다 나는 이해와 사랑의 범위 내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얼마만큼의 이해의 폭을 나눠줘야 하는지. 나는 어디까지 침투할 수 있으며,  그들을 얼마만치 침투시켜야 하는지. 어디까지의 우정과 사랑을 보내야 서로의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살면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을 겪었음에도 늘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시도해 보지 않은 마음과 그렇지 못한 마음은 천지차이였고, 그때 배운 깨달음으로 건넨 나의 시도와 용기에 응답해 준 사람들이 지금도 내 곁에 주로 있다.


 문 밖을 나서 걸으면 가끔 그가 떠오른다. 한강공원을 가서 걷게 되는 순간에도. 집 앞 그 옆의 긴 터널을 지날 때도. 새벽의 아침을 걷게 되는 때가 와도. 몇 순간들과 장소엔 그가 늘 상주했다. 괜찮아 전화 줘_를 들은 그 어디마다. 전화기너머 그 목소리가 이명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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