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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순이 Feb 15. 2023

신(神)에게도 신이 있다면 그 신에게 묻겠습니다.

지구도 새로 하여금 뒤척입니까. /이병률. 새

- 엄마!!!! 오늘 달 진짜 밝다! 봤어? 소원 빌었어?


- 응 봤지~~ 새롬이가 달을 그렇게 좋아해서 아빠가 며칠 밤을 때 빼고 광낸 거 같아 엄청 크고 밝더라~~~


새롬이가 달을 좋아해서 아빠가 며칠 밤을 때 빼고 광냈다.


표현이 귀엽다. 엄마가 가끔 귀엽다. 아빠가 며칠밤을 밤새워했을 일이 귀엽다. 보고 싶다.

2019.02.21


 아빠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을 때부턴가? 무언가에 비는 행위가 언젠가부턴 내겐 의식처럼 이뤄졌다. 열세 살의 어렸던 그때의 나에겐 마주치는 어른들마다 "어쩜 좋니.."라는 미간 접힌 안타까운 눈빛과 함께 "늘 기도해라 새롬아." "기도만이 아빨 위하는 일이야." 하셨다. 나는 지금도 그때도 여전히 종교가 없는데, 대체 어디에다가 기도를 하라는 건지. 어디에 대고 얘기하고 소리쳐야 아빠가 다시 건강히 집으로 돌아올지, 얼마나 오래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야 우리 다섯 식구가 다시 한집에서 잘 수 있는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못한 행동을 여기저기다 했다. 자고 일어난 남의 집 이불속에서도, 학교를 가다 갑자기 보게 된 나비에도, 길지도 않던 속눈썹이 떨어질 때도, 푸른 잎들이 모여있는 어디마다의 클로바들 속에서도, 소원을 빌 빌미들만, 이유들만 굳이 굳이 찾아 성심성의껏 빌었다. 그러다/ 그러다 달을 발견한 것이다. 아빠와 떨어져 있을 때도, 엄마와 떨어져 살 때도, 다 크고 나서 사랑했던 애인과 떨어져 있을 때도 우리를 이어 줄 매개체가 필요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이고, 어디에서 봐도 같을 수 있는 것. 가리워진 구름에, 우리가 멀어져 있는 시차에도. 한자리에 있어 줄 단 하나뿐인 무언가. 지금도 그때도 달밖에 없었다. 내겐.


 매 1월 1일마다 그 해의 열두 달에 보름달의 날짜를 검색해 보곤 쓱 읽어본다. 그리곤 그날의 날짜들은 외우고 싶지 않아도 외워지며 그날마다의 나의 아침은 그 달을 보기 위한 밤까지 벅차게 부산스럽다. 그날엔 아침부터 비가 와도, 장마의 한가운데나, 눈보라가 치는 날에도, 미세먼지가 가득해 뿌연 밤까지도 전부 내겐 상관이 없었다.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떠있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디서든 그 밑에 멈춰 나의 사리사욕을 채웠다. 비단 그게 나의 개인적인 짝사랑에 대한 바램이나 내 존재 가치에 대해 비는 것 말고도 내 가족의 건강과 아끼는 단출한 주변인들의 행운을 비는 이타적인 바램들도 있었으나 그거 역시 내가 전지전능하지 못한 탓에 비는 사리사욕이 분명했다. 매번 비는 소원의 내용도 비슷했다. 아니 똑같았다. 같은 사람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고, 같은 내용의 소원들을 수없이 빌었다. 지난달에 빌었던 이야기를 오늘 또 빌었고, 작년에 원했던 바램을 올해도 원했다. 아직 들어주지 않아서 빌었고, 어떤 건 들어주긴 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해서 또 빌었고, 어떤 것들은 절대 이뤄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오기로 빌었다. 이뤄지지 않을 테지만 내가 얼마나 꾸준히 원하고 있는지를 일러주고 싶었다.


 건강과 사랑, 행복의 단어와 돈과 부자. 그냥 부자가 아니라 왕부자! 그리고 다시 사랑. 같은 키워드가 늘 반복되었으며 늘 아끼는 몇 사람들의 실명들을 거론하며 되풀이했다. 과거의 나를 잊은 듯 오늘 처음 비는 소원처럼, 그렇게 매 달을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매번 했다. (사실 보름달이 뜨는 날만 빌었던 것도 아니다. 그날 내 눈에 예쁘기만 하다면 그날마다 빌었다. 거의 매일 하늘에, 달님께 빌었다는 말이다.)


오 년 만이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지독한 운명론자인 나로 선 정말 우연찮게 만났으면 사실 더 좋았을 거 같으나, 현실은 그러지 못하고 술 취한 새벽, 바뀌지 않은 전화번호 같은 흔하디 흔한 루트로 우린 내가 좋아했던 창이 넓은 그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사실 술을 함께 먹을까도 했지만 굳이 그런 모험은 하고 싶지 않아서 커피를 먹자 했는데 그 카페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좋으면서 싫었다. 그 카페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게 싫었고 그 카페를 기억해 주는 게 좋았다.

 카페엔 내가 먼저 도착했으나, 그가 올라올 때 손에 쥔 트레이의 음료는 두 잔이었다. 그가 앉긴 했으나 누구도 먼저 안부를 묻지 않았다. 사실 인사도 없었다. 나도 왜 전화했냐고 묻지도 않았다. 우린 서로의 모습에 놀라지도 않았고, 그냥 가만히 각자의 뜨거운 음료에서 올라오는 김 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그는 "아.!" 작은 외마디 후 양쪽 코트 주머니에서 이것저것 꺼내왔다. 혼자 앉아있을 땐 실상 쓸모도 없을 정도로 작은 원형 테이블이 그가 오고선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들로 복작복작 귀해졌다.

 그러다 그가 먼저 물었다. 5년 만의 첫마디였다.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로 요즘 나를 제일 괴롭히는게 무엇이냐고, 새벽 기도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 그게 첫마디였다.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예상치 못한 그의 첫마디였으나 또 온몸으로 기억할 그의 따뜻함이었다. 내겐 늘 다정한 사람. 여전한 그였다.

 나와 함께 지낼 때 까진 그는 나와 같이 종교가 없었는데, 그래서 나의 말도 안 되는 달님을 함께 숭배했던 그였는데. 새벽 기도 라니. 언제부터, 얼마나, 어떤 걸 믿는지, 몇 가지의 질문이 성질 급한 나의 턱을 넘어 혀를 건너 이빨 앞까지 와다다다 줄을 섰지만 나는 어떤 마음에선지 줄 서있던 그 어떤 것에도 치아를 벌려주지 않았다. 그냥 눈을 마주치곤 웃으며 눈앞의 음료를 마셨다. 얼마나 부자연스러웠을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호들갑 떨며 질문을 쏟아 내는 것보다 더 창피했을, 그가 본 나의 오랜만의 모습이였다. 후회한다.


나의 고단함을 결국은 그에게 전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아니면 오늘까지의 새벽 기도에서도 나를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모든 소원과 바람을 말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이름들이 기어이 있지만 서도, 그는 오래 없었는데.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사실이 이토록 로맨틱한 일인지. 그때 알았다. 내가 매번 할 땐 느끼지 못했던 로맨틱한 행위를 그제야 알았다. 별일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별일이 아닌. 정말 별일이었다. 어느 순간엔 순간이 정말 순간 같다. 그때의 그 대화가 그랬다. 순_간이었다. 그가 나를 또 침해해 버릴 만한 순간.


 나의 달 빛마다의 성심성의와 그의 새벽 기도. 내게 표현은 안 했지만 분명 나를 위해 빌어주는 몇 명의 나의 사람들의 기도와 소원엔 나의 행복이 분명히 묻어있을 텐데 차고 넘칠 텐데 이렇게 또 삶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엔 뭐가 그리 부족했나 싶을 정도로 좌절의 시간들을 겪을 때가 있다. 나의 불안이 작아지지 않고 여전히 잠 못 드는 새벽을 홀로 지낼 때마다 그간의 외침들은, 기도들은 허공에 흩어진 건지. 달에게 가닿긴 하는 건지 몇 번은 원망한 적도 있다. 그러나 매번 나의 원망은 나는 마술을 바란 게 아니고 그저 바람에 불과하지 않았냐고 사실은 순간마다 나를 누구보다 지켜주고 있겠노라며 다독이는 마음으로 마무리 하긴 하나, 가끔 아쉬운 건 사실이다.


 이렇듯 달을 심히 특별하게 생각하는 내게 달이 예쁜 날에 오는 연락은 쉼이 없이 좋다. 아끼는 친구에겐 늘 내가 먼저 오늘 밤 달 좀 봐봐.라고 연락을 하거나, 너무 잦다 느낄 땐 속으로 오늘 이 달은 꼭 그 친구가 봤으면! 그러다 참을 수 없는 욕심에 참고 참다 결국은 달을 찍어 전송하지만 서도. 내가 예쁘다 생각하는 이 달을 상대는 예쁘지 않게 볼 수도 있겠으나, 그 친구를 또 미워하진 말아 주세요. 달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란 말이에요.


 시대가 발전해서 이제는 달에게도 간다지만 나는 죽을 때까진 달에 가고 싶은 맘은 없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이리 좋다. 사실


막상 그곳에 가닿으면 나의 어떤 순간들의 외로움보다 달이 더 외로워 보일 것 같아서. 더 가여운 달에게 내가 얼마나 불쌍한지 아냐며 너무 잦게 내뱉은 거 같아서. 결국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 나는 그저 비는 사람이어야 하기에. 지금 나와 달의 거리는 371,219km라며 간편한 앱에선 이리 쉽게 알려주는데. 오늘따라 더 멀리 느껴진다. 밸런타인데이라 그런가. 핑계도 참. 로맨틱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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