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내 팔이라고?
신경과에는 신기한 증상들이 많고도 다양하다. 같은 병원 직원이라 해도 특이한 증상을 이야기하면 그냥 일단 신경과로 보내고 볼 정도로 '이상하면 신경과'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의원(1차), 종합병원(2차), 대학병원(3차)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신건강의학과(구명칭, 정신과 또는 신경정신과) 증상인데 신경과로 오게 되는 경우도 많다. 신경과 수련은 거의 대학병원에서 받게 되므로, 대학병원 안에서 신경과 입원 환자의 질환들을 살펴보면, '뇌경색'이 70% 정도로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한다. 전공의 1년 차 때는 뇌경색 환자를 주로 전담하게 되는데, 가장 응급이 많고, 손이 많이 가며(설명할 게 많고 챙길 것도 많다.), 병변에 따라 다양한 증상들로 발현되어 공부할 것도 많다. 내가 신경과 수련 초기에 만났던, 실제로 제법 흔하면서도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전형적인 신경과 질환 증상을 소개해볼까 한다.
환자는 왼쪽 편마비로 내원하였고, 자신의 왼쪽 반을 무시한다. 왼팔을 들어보고 이거 누구 손이냐, 물으면 그것이 본인의 손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우측 중뇌동맥 경색에서 종종 발견되는 소견이다. 본인의 왼쪽을 무시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 내 손이 내 손인 줄 모르고(asomatognosia), 위약감이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anosognosia) 생각한다. 잘 다치고 멍들고 내 왼팔은 마치 없는 신체 부위인 양 행동한다. 난 이게 1년차 때 너무나 신기했다. 내 팔로 환자 팔을 들고 할머니, 이게 제 팔이지요? 하면 진짜 그런 줄 안다! 팔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놓으면 툭, 떨어지는데 이 팔에 문제 있어요? 하면 문제가 없단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뇌가 전체 몸무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 남짓이지만 전체 심박출량의 20%에 해당하는 혈류가 공급된다. 그중에서도 중뇌동맥 경색이 가장 흔하며, 전체 뇌경색의 약 50%를 차지한다. 우측 두정엽 손상이 있을 때 무시 증후군(neglect syndrome)이나, 질병 실인증(anosognosia)이 생길 수 있다. 증상을 보고 병변의 위치를 가늠하는 일은 신경과의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이다. 왼쪽 편마비가 있으면서 눈이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고, 왼쪽 편의 소리도 무시하고 동시에 양팔을 만졌을 때 왼쪽은 인지를 못한다? 그러면서 왼쪽은 내 팔이 아니고 문제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중뇌동맥 경색이 크게 왔다고 보면 된다. 이런 경우 환자는 거의 협조가 안 되고, 많이 움직이고 안절부절못하므로, 시술이 필요한 경우 어쩔 수 없이 재우는 경우가 많다.
무시 증후군은 1년차가 한 달만 일해봐도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어쩌면 매우 흔하고도 쉬운 내용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굉장히 멋있다. '할머니, 이거 할머니 팔 맞아?' '이팔 문제없어요?' 이 두 문장으로 후광이 비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따라다니며 메모하는 인턴이나 1년 차에게, 그래서 방금 내가 말한 게 용어로 뭐예요? 질문 날려주고,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한숨 한번 쉬어 주고, asomatognosia(+) anosognosia(+) 차팅 하면서 우쭐할 수 있었다. 잘 모르던 시절의 내 눈에, 신경과 선배들이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별 것 아닌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별것이 된다. 그래서 신경과엔 '멋있어 보여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래, 그땐 그랬지.
응급실 당직을 서거나, 외래를 보다 보면 비슷한 종류의 병이 줄줄이 입원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우측 중뇌동맥 경색의 환자들이 줄줄이 입원하게 되면 재밌으면서도 힘들어진다. 대부분은 비협조적이며 섬망이 잘 생기므로 밤새 전화가 많이 울릴 것을 각오해야 하면서, 안정기에 접어들면 무시 증후군의 전형적인 현상들을 볼 수 있으니 나름 재미도 있다. 경험치가 쌓이면서, 적절한 대응책을 미리 예견하게 되고, 1년차 때는 어려웠던 일일지라도 내공이 쌓이면서 이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 된다. 모든 일이 그렇듯, 내공이 쌓이면 좀 더 많은 수행 과제를 좀 더 수월하게 해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연습과 수련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이런 현상이 이제 별로 신기하지 않다. 감흥도 없다. 하나 둘 초심자의 눈으로 돌아가 그때의 감흥들을 떠올려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