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로그림 노운 Apr 13. 2022

응급실, MRI실과 친한 편입니다.

신경과 의사의 로비


신경과 의사는 누구에게 잘 보여야 할까? 전공의 1년 차 때 아메리카노를 들고 제일 먼저 로비를 하는 곳이 어딜까? 바로 MRI실이다. 응급 주사나 시술이 필요한 환자가 왔을 때 어떻게든 빨리 이미지를 얻고 처치가 들어가야 하므로, 제일 먼저 원내 번호를 외는 곳이 바로 MRI실이다. “응급실 환자 어큐트인데요, 지금 바로 됩니까?” 그저 환자가 올 때마다 빨리 해달라고 쪼아댈 수는 없으니, 음료수라도 하나 사들고 가끔 찾아간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결국 사람과 사람 간 서로가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환자들이 조금이라도 처치가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내가 서둘러야 하고, 안되면 되게 해야 한다. 미리 좀 친해놔야 정말로 응급한 상황에 빠른 대처가 가능해진다. 그러면 비록 내 돈은 들었지만, 환자 좋고 의사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게 되는 셈이다. 생존을 위한 투자 전략이랄까. 특명, 제일 먼저 MRI실과 친해져라. CT와 MRI는 같은 영상 기사들이 로테이션하는 구조이므로 몇 번만 왔다 갔다 음료수를 나르면 어느 정도 안면은 트게 된다.


다음으로 친해져야 할 곳은 어딜까? 바로 응급실이다. 응급실은 애증의 관계다. 응급실 전화가 울리면 일단 싫다. 어떤 과장님이 전화를 하든, 어떤 전공의가 전화를 하든, 응급실 전화라는 이유만으로 일단 싫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노래로 바꿔놓아도 결국엔 싫어지게 만드는 마성의 힘을 가졌다. 일단 전화가 오면 싫기는 하지만 어쨌든 환자를 빨리 처치하고 상태를 잘 전달받아야 하므로 아주 중요한 대상이기도 하다. 급할 때 도움을 구할 수 있고 서로 돕고 도와주는 상생의 관계이다. 병실이 없거나, 본원에서의 처치가 불가능해서 전원이 필요한 경우에도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본의 아니게 고생한 응급실에 가끔 피자를 사주기도 하고, 음료수를 넣어주기도 하는데 이 역시 사비 들여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제일 고생하는 파트이기도 하고 (아니 그럴 거면 전화나 친절히 받아줄 것이지) 특히나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는 더욱이 그러하다.


전공의 4년과 전임의 1년을 마치고 대학을 나와 종합병원에서 처음 응급실 콜 당직을 설 때, 불안감이 커졌다. 나는 바로 환자를 볼 수 없고, 그렇다고 또 환자를 노티 하는 사람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기에, 그만큼 불안도가 높아졌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5년의 세월 동안 쌓인 내공은 단단했고, 생각보다 많은 변수를 생각한 채 노티를 받기 때문에 당장 튀어가 5분 안에 환자를 보지 않아도, 적절히 처치해놓을 수 있는 요령이 생겼다. 개똥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으면 된다. 개똥 같이 말해도 질문을 잘해서 찰떡으로 알려줄 수 있게 유도하면 된다. 또 노티 한 사람에 따라 신뢰도 구간을 나름 경험치로 설정하고 거기에 맞게 움직일 줄 알게 되었다. 이게 세팅이 되려면 기본적으로는 검사실과 응급실과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환자를 원활하게 잘 보려면, 보조 인력과의 관계도 좋아야 한다. 그래서 난 가끔 로비를 한다.

이전 02화 내 몸의 반이 내 것이 아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