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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별 Toni Jan 14. 2023

열병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그대에게

나의 아픔을 그대가 아는가

바쁜 와중에 가끔 내 생각이 났던가

화면을 켜니 그대가 있다

쑥스럽게 툭 던지 내 말을 그대가 단단하게 붙잡으니 

내 입에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

뒤죽박죽 말이 이어지니 

나도 몰랐던 내 아픔의 깊이가 헤아려져 

가슴 속 단단한 돌덩이가 툭 깨지고 

파편들이 작은 조각으로 흩어져

그 순간 나를 바라보는 그대의 눈이 참으로 아름다워

깊은 이해와 공감으로 두 눈이 빛나

말이 이어지자 생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 

얼굴이 따끈해져

회색이었던 세상에 빨간 물감 한 방울이 떨어져

내 세상이 다시 색을 입을 때까지

그대에게 말해

붓을 단단히 잡아



레이먼드 카버의 '열병'을  다시 읽고 나서 내 생각이 났다고 그녀가 말했다. 친분이 두터운 사이가 아닌지라 바쁜 일정을 쪼개서 내게 연락했다는 게 의외였지만 고마웠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2시간 넘게 오갔다. 통화 후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기분이 상쾌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열병'에서 칼라일이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열병'은 갑작스럽게 아내가 떠난 후 두 아이를 키우며 고군분투하는 칼라일의 위태한 일상을  그리면서 시작한다. 칼라일의 아내 에일린은 자신의 예술혼을 찾겠다며, 7년 동안 이어지던 결혼 생활을 접고, 칼라일의 직장 동료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나버렸다. 그 후 칼라일이 아이들의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에일린이 웹스터 부인을 추천한다. 아이들을 잘 돌보아주는 웹스터 부인은 칼라일에게 구원자처럼 고마운 존재다. 칼라일과 아이들의 일상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칼라일도 데이트를 시작한다. 그러나 칼라일에게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 가족을 버리고 떠났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집으로 전화를 거는 에일린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녀가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일 수 없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는 여전히 그림자처럼 그의 일상에 드리워져 있다. 

안정된 생활이 6주째 접어들자, 마침내 칼라일도 에일린이 떠난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자 그간 누적된 긴장이 풀리면서 체념과 함께 호된 열병을 앓게 된다. 칼라일이 몸져누워있는 것을 알기라도 한 듯, 그간 무소식이던 에일린에게 전화가 온다. 칼라일에게 열병을 기록으로 남기라고 조언한다. 느낌과 생각을 자세하게 글로 쓰라고 말한다. 아픈 칼라일 옆에서 웹스터 부인은 정성을 다해 칼라일을 보살핀다. 에일린과의 통화가 끝난 후, 칼라일은 웹스터 부인에게 자신의 열병에 대해 털어놓는다. 칼라일의 감정이 격해지고 이야기가 오랫동안 이어진다. 웹스터 부인은 칼라일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준다. 이야기를 끝내자, 두통도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면서 칼라일은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고 느낀다. 아내가 자신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래도 아내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이상과 가치에서 벗어난다. 새로운 미래에 눈을 돌린다. 웹스터 부인이 경제적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고 멀리 떠나게 되었지만, 칼라일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열병을 앓고 나서 단단해진다.

'영원히 함께하겠어!',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던 관계가 하루아침에 비틀어질 때가 있다. 나의 의지나 애정과는 상관없이 사소한 해프닝 하나 때문에 관계가 단절되어 버리기도 한다. 비정직함과 단절된 대화가 서운함과 오해로 둔갑하고, 즐거움과 공감이 넘쳐났던 관계는 그만큼 더 큰 상처로 남는다. 관계가 틀어지면 내가 뭘 잘못한 것인지 따져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먼 과거에 있었던 절교의 아픔까지 하나 둘씩 떠오른다. 자아가 쪼그라든다. 쓸데없는 감정 소비라는 걸 알면서도 '못난 나'의 옷을 벗어버릴 수 없다. '못난 나'의 옷을 덮어쓴 채 끙끙 앓는다. 

칼라일처럼 사랑하던 이가 나를 배신하고 떠날 정도로 고통스러운 관계의 단절은 아니지만, 나도 내가 정말 좋아하던 모임에서 관계의 단절을 겪어야 했다. 나는 내가 내쳐졌다고 생각하지만, 모임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내쳤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억울한 점은 서로의 오해를 유발한 사건에서 나는 그저 제3자였다는 점이다. 중년의 아줌마가 풋풋한 소녀로 돌아가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고, 별것 아닌 농담에 까르르 웃으며 순수한 우정을 쌓던 시간이 정말 좋았다. 문학을 노래하던 시간이 정말 아름다웠다. 새로 사귄 벗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래서 그들과의 단절은 내 일상을 흔들 만큼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모임에서 튕겨 나온 후 내가 '못난 나'의 옷을 덮어쓰고 있을 때, 그 옷을 벗겨 준 게 그녀였다. 웹스터 부인처럼 가만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칼라일처럼 과거에서 더 먼 과거로 갔다가, 또 현재로 왔다가 정처 없이 떠돌며 주절주절 이야기하다 보니, '못난 나'의 옷은 저만치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그 옷을 바라보고 있자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나약한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나니 뭔가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온다. 모든 관계가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같지는 않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잠시 교류했던 시간에 감사하면 된다. '못난 나'의 옷을 입을 날이 다시 오더라도 이제 덜 힘들어 할 것 같다. 가만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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