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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초이 Apr 13. 2022

ep9. 인내와 희생 없는 육아는 없다

그렇게, 엄마가 된다.

인내와 희생 없는 육아는 없다 



육아라는 것은 너무도 슬프지만 당연하게도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역할이 수행이 됩니다. 엄마의 시간, 아빠의 노력, 조부모의 헌신, 그 외의 도움을 주시는 많은 분들의 인내와 희생이 모아져 한 명의 아이가 자라게 되지요. 우리가 육아를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희생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준비를 하였다고는 하나 생각보다 꽤 큰 희생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부부간의 역할 분담을 놓고 분쟁도 발생하게 됩니다. 




희생의 비례 법칙
엄마 아빤 추워도  너희만 춥지 않다면.. 



나를 돌아봤을 때, 내가 부모로서 하는 육아보다 꽤 많은 개인적인 시작을 누리고 살았다면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희생이 녹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그래도 내가 하고자 마음먹은 일을 했다면, 그것은 나 나의 배우자가 되었든, 부모가 되었든 혹은 아이들이 방임되었든 어떤 누군가는 희생이 되었기 때문에 내가 그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육아를 하면서 부부가 서로가 희생을 했다고 생각하며 다툼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각자 생각하는 희생의 양이 차이가 나기 때문인데요. 희생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게를 재거나 혹은 부피가 있는 물질적인 상태가 아닌 만큼 각자 생각하는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간에 대화를 하면서 이 간극을 줄여 나가야 하지만 서로의 입장만 이야기한다면 그 차이를 줄일 수 없겠죠? 현명하게 서로가 희생한 부분에 대한 확실한 인정의 중요한 부부입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이 생각과는 다르게 쉽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고요. 




보상의 대한 기대는 사치 
너희가 웃어주는 게 보상이지 



육아에 대한 보상은 바로 아이들 그 자체입니다. 사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바른길로 커간다면 그만한 보상이 없죠. 하지만 이 보상에 대한 개념은 상당히 주관적이며 추상적이기에 애매할 수 있습니다. 향후 20년? 혹은 30년 정도 후에 지금 이 시절을 회상하였을 때 “아 그때 고생은 했지만 이 정도면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으니 보람차다.” 사실 이런 정도의 보상이거든요. 


사실 ‘내 새끼 키우는데 무슨 보상을 바라나’라고 하실 수 있겠지만 인간의 능률이라는 것이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노력 대비 적정한 보상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육아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런 건 어떨까요? 한 달에 딱 하루, 10시간은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 그것도 타협만 잘된다면 저 절한 보상이 될 수 있겠죠? 아니면 하루를 기준으로 적절한 육아와 집안일을 분배를 통해 각자의 자유시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상호 간에 협력하는 것도 좋은 보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내와 희생이 없는 육아도 없고, 그만큼 행복하지 않은 육아도 없습니다. 아이가 엄마, 아빠를 생각하는 그 마음에 감동하게 되고 또 아이의 재롱에 행복하게 되거든요. 저마다 다른 포인트의 행복이 있고 그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육아입니다. 아이들 ‘때문에’ 내가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덕분에’ 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불변에 진리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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