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 무사 복귀
요단강가에서 퐁당퐁당 돌 던지다가 아씨고원으로 통하는 산길을 타고 갔다가 돌아온 이야기
인간 문명은 대단하다.
늘 가까이 있던 아스팔트 도로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뜻하지 않게 락페 뛰고 와서 세상이 이렇게 평탄하고 고요했던가 곱씹어 보고 있었다.
* 생각해 보니 정확히 락페스티벌을 다녀온 게 맞다. Rock Festival, 바위 축제
보바씨는 오전에 나왔던 수박 이야기를 상기시키며 과일 시장에 가보겠냐고 하셨다.
어쨌든 이 지역 여름 과일은 맛있으므로 알마티 가는 길에 들러보기로 했다.
그는 곧 웬 판자촌 같은 곳에 차를 세웠다.
슬레이트 벽 사이 문처럼 생긴 곳으로 들어가자 온갖 천연색이 펼쳐졌다.
크리죠브닉(крыжобник), 스마로디나(смородина), 브루스니까(брусника)같은 건 한국에서 보기 힘든 열매들이다.
* 차례로 구스베리, 블랙커런트(까마중열매와 다름), 링곤베리(월귤?). 스마로디나 맛있는데 한국에는 거의 없고 일본에서 '카시스'라는 이름으로 이것저것 제품이 나온다.
마미가 월귤잼을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어 좀 사서 만들어갈까 했지만 도저히 그럴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예상대로 점심을 먹지 못한 채 오후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허기진 자들은 이곳에서 폭풍 쇼핑을 하게 되었다.
산딸기 깔별로 한 통씩 사고(1.5킬로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블랙베리, 복숭아, 살구, 길다란 왕고추, 듸냐, 수박.
트렁크 안에 수납했던 뜯겨나간 사이드스커트 위로 차곡차곡 실었다.
그리고 쌈싸 앵콜
간식으로 종종 먹던 체부레끼(=튀김만두), 소시지빵과 치즈쌈싸가 쇼케이스 안에 새로 들어와있었다.
오전에도 맛있었지만 맛이 없을 리 없는 상황에서 먹는 쌈싸는 더 훌륭했다.
보바씨에게도 쌈싸 하나, 물 하나를 사서 내밀었다.
오후 6시 좀 넘어서 알마티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바씨는 메이람이라는 사람과 통화하는 듯했다.
모레로 예정된 다른 여정에 대한 내용이었다.
- 메이람, 모레 일요일에 손님들이 그쪽으로 갈 예정인데 차량 하나 수배돼요?
- 알아보죠, 몇 명이에요?
- 4명. 내 고객들이니 최대한 할인 좀 해줘요.
- 오케이, 이따 전화할게요.
...
- 여보세요, 2만 텡게면 괜찮나?
- 좋지요. 모레 봅시다.
보바씨는 전화를 끊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이 차로는 모레 첫 번째 목적지까지 못 가요. 중간에 갈아탈 차량 하나 찾아놨는데 4명에 2만 텡게 주면 되고, 3천 텡게는 아까처럼 입장료로 현금 챙겨두면 되겠습니다. 다녀오면 다시 만나서 두 번째 목적지로 가는 걸로 할게요.
- 오 알겠습니다.
알마티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7시가 넘었다.
오전에 보바씨가 화장실 사용료, 냅킨 구매비, 쌈싸와 빵 가격을 모두 지불하셔서 원래 드리기로 했던 비용에 살짝 더 얹어서 드렸다.
* 내 책임은 아니었지만 에스티마의 희생도 마음에 걸렸다.
얹었다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얼마 안 되는 금액이었는데 왜 이리 많이 주냐며 돌려주려고 하셨다.
보바씨는 다음날 차량 수리를 하고 모레 다시 데리러 오시기로 했다.
아씨고원보다 더욱 긴 여정이 될 것 같다.
그래도 최소한 에스티마로 오프로드를 달리는 일은 없겠다.
과일과 채소를 정리하고 저녁식사를 하러 나섰다.
숙소와 가까운 곳이라 걸어갔다.
가격이 나쁘지 않고 맛도 괜찮다는 카자흐스탄 음식점이다.
다른 지점도 있는 것 같다.
1. 처음 자리를 시커먼 구석탱이로 안내해서 밝은 곳으로 옮겼다(직원의 악의는 전혀 없었다. 센스가 모자랐을 뿐).
2. 쁠롭*은 점심시간에만 주문이 가능했다.
* плов: 고기, 채소, 간혹 견과류 및 건과일을 같이 넣고 찌듯이 볶듯이 조리한 중앙아시아 밥. 한번은 학생식당에서 나온 아르메니아식 건살구밥을 먹고 충격받았다.
3. 모든 메뉴 조리는 4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고 안내받았다. 나의 라그만이 그럴 리가 없는데, 식탁에 놓인 종이에도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안내가 적혀있다. 옮기기도 애매해서 기다리기로 했다. 실제로는 15분 정도 걸려서 나왔다.
4. 술은 판매하지 않는다.
한 줄 평: 하필 방문했던 날 주방장이 몹시 우울했던 걸지도?
1. 바삭따끈해야 할 바우르삭(도나스)은 다 식어빠져서 질겼고,
2. 푸짐한 맛으로 먹는 라그만(채소고기볶음면)은 잘못 만든 나폴리탄 같았고(라폴리탄),
3. 비쉬바르막(밀가루피+말고기찜)은 원래도 그리 즐기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랬고,
4. 위 사진 중 왼쪽 사진의 오른쪽 상단을 보면 초록색이 보이는데 그게 사과 레모네이드다. 색소와 당이 필요 이상으로 풍성했다.
분명 다른 날은 괜찮았을 테니 손님도 많고 자체 식재료도 판매를 하고 있겠거니 했다.
식당이 넓어서 종업원 부르기가 힘들었다.
은색 판떼기가 식탁에 하나 놓여있길래 수동 미러볼처럼 팔락팔락 흔들어서 빛반사시켰다.
이내 몹시 어려보이는 종업원이 웃음을 꾹 참으며 다가왔다.
- 이거 이런 용도는 아니죠?
- 아니죠.ㅋㅋㅋㅋㅋㅋㅋㅋ
생긴 것처럼 그저 음료 받침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와 가까운 마트에 간식거리 구경하러 갔다.
브랜드명 '늑대 양조장'
노란색 메도부하(медовуха, 꿀술) 이름이 깜찍해서 옆의 초콜릿 스타우트와 함께 구매했다.
'뭔가 잘못된 꿀'이라니.
부담 없이 달달한 맛이었다.
* 수즈달(суздаль)에서 꿀술 맛보기 세트 마시고 몽롱한 기분으로 햇빛 아래를 걷던 날이 생각났다.
다음날 일정에는 그 어떤 모험도 없다.
알마티 시내에서 편하고 안전하게 두 발로 걷거나 쾌적한 택시를 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