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이 좋았던 마라탕

by 뮤즈


스모그가 심한 흐린 날이었다.

“언니 오늘은 흐리니까 마라탕 먹으러 가볼까요?”

3교시를 마치고 쉬는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 와서 문맹퇴치를 위해 다닌 중국 학교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들과 수업 마치고 매일 다른 메뉴의 점심을 먹어보는 것이 그때 나에게는 유일한 바깥세상 구경이자 낙이었다.

자리가 고정석이었던 교실에서 나는 셋째 줄 같은 자리에 앉았던 두 친구와 친하게 지냈는데 두 살 어린 그 동생들은 나보다 몇 달 앞에 베이징에 와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나들이도 다니고 맛집 탐방도 다니는 이미 중국 생활 실전을 터득한 배울 것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 중 한 명이 오늘은 날씨가 잔뜩 흐리니 마라탕을 먹으러 가자한다.

당연히 나는 아직 마라탕을 못 먹어봤다.

나의 표정으로 그것을 눈치챈 친구는

“이 언니 아직 그 맛있는 마라탕을 못 먹어봤구나.

오늘은 우리 언니 마라탕 신고식 하는 날~!!”

마침 우리 셋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 처음 등록하러 갔을 때 만나서 반가웠고, 그다음에 교재를 받으러 갈 때부터 학교에 버스를 타고 같이 다녔다. 그렇게 한 친구는 1학기, 또 한 친구는 1년을 같이 학교를 다녔다.

그날은 우리가 사는 곳 가까운 마라탕 전문식당으로 갔다.

마라탕 전문식당이라고 대단한 식당은 아니고 메뉴가 유일하게 마라탕만 있는 곳이다.

처음 가본 나는 무조건 친구들이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



가장 먼저 반투명 소쿠리와 집게를 들고 수북하게 진열된 식재료들을 소쿠리에 담았다.

친구들이 담는 것을 보니 청경채, 와와 차이(애기배추), 숙주나물, 시금치, 목이버섯, 표고버섯, 팽이버섯, 다시마, 두부피, 두부, 어묵, 옥수수, 요우티아오, 우무 실면, 라면 칼국수 면, 관펀(고구마 가루로 만든 넓은 면) 비록 한 각종 면을 수북이 담았다. 그리고 식재료가 담긴 소쿠리를 들고 계산대로 갔다. 소쿠리채로 무게를 달아 요금이 정해졌다. 그리고 직원이 어떤 맛으로 할 건지 물어본다.

매운 정도인데 부라(不辣, 안 맵게), 웨이라(微辣, 조금 맵게), 종라(中辣, 보통 맵게), 트어라(特辣, 아주 맵게)가 있다. 보통 한국인들은 웨이라로 선택하는데 웨이라는 초록색 플라스틱 소재의 번호가 찍힌 대기표를 주었다. 부라(맵지 않게)는 번호표가 노란색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마라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면 마라(麻辣)는 중국 사천 지방의 향신료로, 기온차가 심하고 습한 기후로 인해 음식이 부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하던 재료다. 마라는 저릴 마(麻), 매울 라(辣)를 써 혀가 마비될 정도로 맵고 얼얼한 맛을 의미한다. 마라 향신료에는 육두구, 화자오, 후추, 팔각 등이 들어가 마취를 한 듯 얼얼하면서 독특한 맛을 낸다.

중국에서는 마라가 들어간 탕 요리인 마라탕, 각종 재료를 마라 소스에 볶아 만든 요리인 마라샹궈(麻辣香锅), 마라 소스에 민물 가재를 볶아 만든 마라롱샤(麻辣龙虾) 등 마라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를 즐겨 먹는다.



계산을 했던 직원이 내가 들고 있던 번호표의 숫자를 호명했다.

카운터로 가니 내가 골랐던 식재료들이 몽땅 빠져있는 그릇에 내가 가진 대기표의 번호와 같은 번호 집게가 꼽혀있었다. 직원은 나의 번호표를 받고 그릇에 꼽힌 번호표를 빼고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마라탕이었다. 친구들의 것을 보니 선택한 식재료에 따라 마라탕의 양도 색도 달라 보였다. 맛도 당연히 다를 것이고.

‘조금 맵게’를 선택한 마라탕 첫 국물을 떠먹어보았다.

이것은 매콤한 신라면 국물도 아니었고, 얼큰한 짬뽕 국물도 아닌 것이, 식초 넣은 짬뽕 같았던 태국의 뚬양쿵의 국물도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그 마라의 매운맛이 구 나하는 혀를 얼얼하게 하는 매운맛이었다.

다행히 ‘약간 맵게’를 선택해서 견딜 수 있는 매운 정도였고, 여러 식재료들과 어우러져 매운맛은 한층 중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나는 마라탕을 먹을 때 국물은 거의 먹지 않았다.

짙뿌연 회색빛의 하늘을 바라보며 먹었던 나의 마라탕 신고식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마라탕을 먹고 난 후식으로는 얼얼함을 달래는 달달한 버블 밀크티나 시나몬가루 얹은 카푸치노를 찾게 되었다.


마라탕이 나에게 온 첫날은 스모그 가득한 잔뜩 흐린 날이었다.

그 뒤에도 나는 봄꽃이 화창하게 피고 꽃가루가 날려 재채기로 고생하던 봄날에도, 푸르른 신록의 연꽃이 핀 여름날에도, 나무의 잎이 그들의 패션쇼를 위해 빨강과 노랑으로 옷을 갈아입은 가을날에도, 쨍하게 푸른 겨울 하늘 아래 눈이 오려나 설레며 마라탕 식당 문을 밀고 들어갔다.

나의 마라탕에는 처음 마라탕을 가르쳐준 지금은 귀국을 한 학교 친구들, 나의 여행과 커피 친구들과 이곳에서 만난 인생 멘토들, 아이들 중국어 선생님이 집으로 와서 수업하는 사이 남편과 후다닥 먹고 온 번개 데이트, 왕징 소호의 거리, 후통 지하철역 앞의 사거리가 모두 담겨 있다. 아이들도 친구들과 친목을 도모할 때 마라탕을 먹고 온다며 연락이 왔다.

마라탕과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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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탕 재료, 마라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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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샹궈, 마라롱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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