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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Mar 26. 2022

행복한 가정은 비슷 불행한 가정은 나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에는 유명한 첫 문장이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 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가정법원에는 항소부와 가사소송부 외에 소년단독 재판부와 가정보호, 아동보호 단독부가 있다. 가정보호, 소년 단독부에서는 법무부에 조사를 위탁함으로써 부부 또는 부모와 자녀 간 문제를 진단한 후 재판에 참고하여 처분한다. 


이것이 형사사건 조사와 크게 다른 점이다. 가정환경을 샅샅이 조사하는 것이다. '사법이 가정에 개입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말한다. 


'남의 가정사일에 관심 꺼라', '내 자식 내 맘대로도 못하냐'라는 말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유교문화에서 나온 말이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경제적 능력을 쥐고 있는 아버지가 가정의 중심이고 가정에서 가장 높은 권위자로 대접받는 시대는 지나고 양성이 평등하며 인권이 중시되는 현대가 왔다. 


가족 간에도 법률이 적용되고 법적 개입 가능하다. 


가정법원 위탁 조사관으로서 수많은 가정 문제를 보아왔다. 결혼하기 전부터 자녀가 있는 지금까지 약 15년 동안 꾸준히 조사를 진행해 오면서 결혼 전에는 와닿지 않았던 저 문장 '행복한 가정은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이 깊이 와닿는다. (사실 미혼때부터 파탄지경에 이르는 가정을 너무 많이 봐 온 지라 직업 후유증으로 결혼을 못할 줄 알았다)


행복한 가정은 대략 비슷하다. 경제적으로 안정돼있고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간다.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남편의 외도, 도박, 경제적 무능, 폭력 등등. 


또는 아내의 사치, 의부증, 폭언, 히스테리 등등. 또는 자녀의 비행, 성적 등등의 이유로 불행하며 각 가정마다 제각각 갈등의 이유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가정의 한 가지 특징을 뽑아라 한다면 공감능력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부부 개별 면담에 들어가면 각자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자기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자신이 중심이 되어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며 스스로 안쓰러워 눈물을 흘린다. 


폭력, 모욕 등의 가해자로 왔음에도 상담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피해자가 되어 있다.  가해자는 없고 둘 다 피해자이다. 


기억에 남는 한 가정이 있다. 사건 내용은 단순하다  '남편과 아내가 말다툼 중 아내가 아끼는 난초를 남편이 가위를 잘라 버렸다는 것이다.' 죄명은 재물손괴다. 


남편을 신고한 이유에 대해 아내는 난초를 자식만큼이나 애지중지 했는데 보란 듯 난초를 잘라 버린 것은 나에 대한 폭력이며 더 이상 혼인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편도 나름 이유가 있다. 실직하고 나서 아내가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항상 자신을 무시해 왔다는 것이다.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그만 소심한 방법으로 대항한 것이라고 한다.    


두 사람의 대치는 실로 팽팽했다. 한치의 이해도 양보도 없이 각자 불만은 손끝만 대면 터질 것 같이 부풀어진 풍선 같았다.


남편은 자기 대신 일하게 된 아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아내는 실직하고 집에 있는 남편의 심경이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자기 힘든 것만 본다 


가정문제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역할극이다 각자의 역할에서 연기를 해보는 것이다. 역할극을 하는 가족상담에 응한다는 것! 그 자체에 희망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거부한다.  혼인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잘못이 상대에게 있기 때문이다.  

상담명령에 응한다는 것은 관계 회복을 위한 의지가 있다는 것이고 이해가 되면 자신도 바뀔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예후는 긍정적이다


공감능력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공감을 받아본 경험에 의해 공감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바빠 대화할 시간이 부족하고 감정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느끼며 간과했을 것이다. 


이제라도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행해지는 공감을 경험함으로써 공감능력이 생기는 기회가 많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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