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언제나 그렇든 세상은 나보다 빠르다.

by 최무난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나보다 빠르다.'


이르다고 생각했던 새벽 6시의 출근길 차를 끌고 천변이 보이는 길을 지나다 보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한쪽 공간에서는 많은 아주머니들이 모여 체조를 하고 있고 뻥뻥 뚫려 쉽게 갈 줄 알았던 도로는 새하얀 연기를 내뿜는 자동차들로 가득하다. 전 날부터 이른 새벽에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가득했던 나는 어느 순간 반성과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것에 꽂히기 시작하면 여러 번 반복해야 성이 풀리는 성격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드라마 정주행이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많이 봤다고 말할 수 있는 드라마는 바로 '미생'이다. 회사생활 한 번 해보지 않았지만 내게 여러 의미로 마음에 와닿는 장면들과 대사들이 가득했기에(장면마다 나오는 대사 한줄한줄이 정말 기가 막히다) 1년마다 한 번씩 챙겨보았던 드라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새벽 6시 차를 이끌고 출근을 하던 내게 어느 한 대사가 마음을 울렸다. '언제나 그렇든 세상은 나보다 빠르다.' 지금 걷고 있는 여러 사람들 체조하는 아주머니들 분주히 움직이는 차량들은 문득 언제부터 모이고 움직이고 이동하고 있었을까? 남들은 자고 있을 시간에 움직여야 한다는 분노에 쌓인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사그라뜨리는 눈앞에 보이는 장면과 귓가에 맴도는 대사 한마디였다.


그 와중에 또 다른 대사 한 마디가 생각이 났다. 드라마 속 오상식 과장님의 '우린 아직, 미생이야' (이때부터 이성민 배우님의 극팬이 되어 벼렸다.)

살아남지 못해 불완전하게 버티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하루하루 불안정한 바둑판에서 움직이는 손 때 잔뜩 낀 지저분한 바둑돌과 같았다. 먼지로 뒤덮여 사회를 돌아다니는 노가다꾼말이다. 그럼에도 '아직'이라는 단어가 있었기에 가슴을 울린 대사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아직'이라는 말이 앞에 어떻게 올 지 모르는 희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아직'이라는 이 단어는 무서운 놈이긴 한다. '아직 ~ 못했어..')


여전히 내게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는 것은 너무나 피곤하고 순간 짜증이 앞설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만 같다는 마음이다. 아직 다가올 무수히 많은 날들이 내 앞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움직여야 한다. 그럼에도 때로는 누구보다도 느리게 움직이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럴 때면 가끔은 천천히 움직이면서 쉬어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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