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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종이 치면 배가 아픈 이유

by 발견씨


중학교 첫 시험부터 고3 수능까지,

시험 종이 치면 배가 아팠다.

심리적인 문제라고 했다.


...도대체, 어떤 심리?

그걸 모르는 게 문제였다.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걸까?

준비가 부족해서 배가 아픈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공부해 보자.


초등학생 때는 1등도 해봤으니까

열심히 하면 할 수 있을 거다.

열심히 하면,

안 아플 수 있을 거다.




아니었다.

자신감이 있어도 배는 여전히 아팠다.


아, 압박감 때문인가?

열심히 준비했으니

잘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럼 이번엔 공부를 아예 하지 말자.

티끌만큼의 기대도 없게,

한 줄로 찍고 잠이나 자자!




이번에도 소용없었다.

배는 여전히, 시험 종만 치면 아팠다.


그렇게 45분을 견딘 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오면

다음 시험은 15분 정도 괜찮았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화장실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편하게 볼일을 볼 수 없었다.




모든 만남이 차단된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도

나는 괄약근과 사투를 벌였다.


화장실에 있는 걸 들킬까 봐,

안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똥 싼다는 소문이라도 날까 봐.

문 밖의 발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누군가 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다시 한번 문이 열릴 때까지,

문의 잔향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시험이 시작돼도,

나는 볼일을 다 본 뒤에야

교실에 돌아가곤 했다.


화장실에 친구들이 없는 시간은 수업시간뿐이었으니,

종이 쳐도 어쩔 수 없었다.


배가 아픈 채로 45분을 버티는 것보다

문제를 다 못 푸는 게 나았다.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배가 아프지 않은 방법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저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화장실을 찾고,

고통을 견딜 준비를 할 뿐이었다.




시험 종이 치면 배가 아팠던 이유는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화장실을 못 가게 하는 분위기가 문제였다.


그래서 지금도

"두 시간 동안 화장실 못 가" 같은 말을 들으면

배가 조금 아프려 한다.


그러니 제발,

무슨 일이 있어도 보내주겠다고,

고속도로 한가운데서라도 세워주겠다고 말해줘라.

그럼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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