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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 해방일지

by 발견씨


어릴 적 나는

지각 한 번 없고 숙제도 빠짐없이 해내는

성실한 아이였다.


궁금한 건 도서관에서 스스로 찾아봤고,

언니 오빠가 투닥거리는 방 안에서도 묵묵히 공부했으니

성적도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눈에 띄기 시작한 건 중학생 무렵,

정확히는, 시험 기간마다

극심한 복통을 견디게 되면서부터다.




시험 기간마다 괄약근을 조이며 버텨야 했던 나는

점점 다른 무언가에 애쓸 이유를 잃어갔다.


종이 울리고 교실에 들어가는 건 기본.

화장실에 있다가 지각해 후문을 넘는 일도,

교직원 전용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일도

나에겐 그냥 그런 일이 되어버렸다.


몸의 반응을 따르기 시작한 뒤로,

일상 속 행동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방과 후엔 칠판 한가득 에펠탑을 그리고,

수학 시험지 뒷장에는 시를 쓰고,

점심시간엔 학교 잔디에 앉아

기타를 치며 친구들과 노래를 불렀다.


1층 복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도 가끔 했지만

문제를 일으킬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면 될 일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기 싫은 건 오래 버티지 못했고,

당장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했다.


언니의 권유로 들어간 체대는

선후배 대면식이 싫다는 이유로 이틀 만에 자퇴했고,

부모님 몰래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릴 때부터 꿈꿨던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다.


그 후엔 음악에 빠졌다가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다가 또 다른 길로.


내 삶은 늘 예측 불허한 궤도를 그려나갔다.




되돌아보면,

모든 선택의 시작점엔 '예민함'이 있었다.


하기 싫은 걸 머리보다 몸이 먼저 감지했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회피하지 못해

결국 뿌리를 뽑듯 멈춰야만 했다.


그래서 더 자주 포기했고,

그래서 더 자주 도전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대범하다고 말했지만,

어릴 땐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정말 못 견디겠어서 그런 거였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용기와 연약함은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것을.


어디를 중심에 두고 바라볼지는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나는 이제,

예민함을 결함이 아니라

나를 나답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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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