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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면 울리는 '장'

by 발견씨


창밖에선 매미가 울고,

교실 안엔 삼삼오오 흩어진 말소리가 쌓인다.


옅은 땀 냄새와 밀크티 향 사이로

그 애가 눈에 들어왔다.


때로는 왈가닥

친구들 장난에 웃음을 보태던 그 애가,

그날은 홀로 다른 공기 속에 앉아 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분위기에

머릿속엔 하나둘 물음표가 피어났다.





투명한 고등학생들 사이,

안개처럼 흐릿한 그 애 곁으로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애 짝꿍이 결석하는 날이면

둘째 줄이 좋다는 핑계로 옆자리에 앉았고,

지우개 같은 사소한 물건을 빌린 뒤

달콤한 젤리로 고마움을 전했다.


익숙해진 걸까.

그 애는 어느새,

나보다 더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피구를 하다 얼굴에 공이 맞았을 때

그 애는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내 얼굴을 살폈고,

조퇴하는 날에는

말없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떠났다.


그리고 어느 체육시간,

우린 짝이 되어 룸바를 배웠다.

두 뼘쯤 떨어져 마주 섰고,

서로에게 손과 허리를 내어주었다.


달아오르는 볼, 길을 잃은 눈동자.

한시도 같은 표정에 머물지 못했던 그 시간이

내 마음을 고스란히 말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 애 옆이 낯설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이런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반응은 점점 더 느려졌다.


조심으로 반죽된 내 몸은

야간 자습을 마친 어느 밤,

마침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고요한 운동장.

쉴 새 없이 조잘거리던 그 애의

이야깃거리가 멎고,

망설임 위로 온전한 침묵이 내려앉은 순간.


나는 그 애 옆에서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 애와 단둘이 있는 순간마다

장은 늘 알아서 반응했다.


머릿속이 치열해질수록

배 속엔 가스가 차올랐고,

그럴수록 마음도 더 복잡하게 엉켜갔다.


나는 움직임과 호흡이 멎어가는 순간에도

그 애 곁에 머물기 위해

온 힘으로 마지막 방어선을 지켰다.


중학교 때부터

시험기간마다 나를 괴롭혀온 복통은

이날을 위한 예행연습이리라.


나는 내 안의 모든 신호망을 깨워

마지막 방어선을 지원했다.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끝끝내 반란군들의 침공을 막아냈다.


그러나 나는 그만,

그들의 다음 행선지를 간과하고 말았다.


꾸르르륵.


후퇴의 북소리가 울려 퍼진 그 겨울날,

나는 그 애와 단둘이 있는 걸 포기했다.





이제 나는 누군가와 가까워질 때마다

내 감각의 흐름을 먼저 설명한다.


내가 갑자기 자리를 피해도 당황하지 않도록,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그 사람 앞에서

내가 편안할 수 있도록.


여전히 몸의 소리도,

마음을 표현하는 일도 부끄럽지만,

그렇기에 더 선명하게 설명하려 애쓴다.


무엇보다 내가,

예민함을 예민함으로 인정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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