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호 Feb 11. 2022

삶으로서의 육아

  

워라벨 같은 것은 없었다. 직장에서도 치였고, 육아에서도 허덕였다. 육아로 인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고, 퇴근을 하면 다시 출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직장이 더 편하다고 느낀 것은 가끔이 아니었다. 자주 그렇게 느꼈다. 집에 오자마자 할 일이 가득했다. 정말 신기한 것이 있다면, 그렇게 힘든 시기도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일을 하다가 가끔씩 졸았다. 마치 나폴레옹의 쪽잠처럼 눈을 붙이고 땠다를 반복했었다. 너무 피곤해서 어쩔 수 없었다. 입안이 자주 헐었던 이유도 그만큼 피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보니 아이가 성장하고 있었다. 정말로 신기한 것이 있다면, 피곤은 했을지언정 아프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엄마도 아빠도 건강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를 키울 수 있다.

  

마음은 늘 불안했다. 특히 아이가 아프면 그렇다. 출근을 조금 늦게 하더라도 병원에 같이 다녀왔으면 좋겠는데, 불가능한 일이다. 직장인의 기본은 출퇴근 시간을 잘 지키는 근무 태도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하는 도중에 아이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게 될 때도 그렇다. 조금 일찍 퇴근을 하고 싶어도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포기했다. 내 마음은 불안했다. 

  

내 머리 속에 아이 생각이 절반은 있었고, 육아로 힘들어 할 아내 생각은 절반이었다. 일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머리 속에 가족 생각이 가득하니 일에 집중하기는 힘들었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8시간, 출퇴근 2시간, 나머지는 집에서 육아와 잠자기였다. 그런데 직장에서도 가족 생각이 떠나지 않았으니 육아는 그야말로 삶 자체였다. 삶으로서의 육아는 하루도 쉬질 않았다.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이어졌다.

  

이런 삶이 계속된다면 정말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렇게 반복되는 삶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처음이라서 어색했던 것이고, 어색했기 때문에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집중했던 것이었다. 어색함은 익숙함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육아도 그렇게 힘든게 아님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의 성장만큼 나도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익숙함도 잠시, 다시 어금니를 꽉 깨물어서 정신을 집중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우리 가족이 한명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첫째를 키우던 그때로 다시 돌아갔다. 첫째를 키울 때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기저귀도 아주 이쁘게 잘 입혀 주었고, 포대기도 너무 근사하게 묶어줄 수 있었다. 둘을 키우는 일은 정말 힘들어서 내 입안은 다시 헐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아파서 병원에 간 적은 없었다. 정말 신기했다.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굳은 마음이 내 안에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둘째도 점점 커갔다. 

  

한명 키우는 것도 벅차다고 생각했고, 둘째는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순간이 있었다. 닥치면 한다고 닥치니까 정말로 해결되었다. 가끔은 한명만 키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둘 키우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도 한다. 셋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늘 헐어있던 내 입안을 생각하면 셋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빠는 너희들을 사랑하지만, 그만큼 아빠도 내 삶을 살고 싶다. 이제는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도 솔직한 마음이다. 그 마음을 아이들이 알아 줬으면 좋겠다. 아내는 그 마음을 이해하겠지.     

  

언젠가 한번은 처형 댁 아이들 두명과 우리집 아이 두명, 총 네명을 데리고 가벼운 산책을 한 적이 있었다. 아이 넷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본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애국자가 따로 없네요. 아이 넷을 키우고. 정말 잘했어요. 우리 아빠 너무 멋있어요.”

  

이 말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두명을 키우면서도 엄청나게 힘이 들었는데, 만약에 내가 네명을 키운다면 나는 어땠을까? 솔직히 힘을 들었을 것이다. 동시에 아이들 키우느라 나의 정신력은 정말로 높아졌을지도 모른다. 먹여 살리기 위해서 정말로 열심히 살지 않고는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강인함은 두명을 키울 때보다 더 강해져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어머니... 저 애국자 아니에요. 두명은 우리 아이들이고, 두명은 처형네 아이들입니다. 아이들하고 잠깐 산책 나온 겁니다.”

  

시대가 변해서일까. 우리 부모님 세대는 아이들 두명은 기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 낳아 키우기도 버겁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할 수는 없다.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었을테고, 지금은 지금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을테니까. 내가 두명을 키운다고 애국자도 아니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죄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낳아서, 워라벨은 커녕 엄마는 엄마대로 육아 하느라 고생이고,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직장과 가정에 충실하려고 애쓰는 한 사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삶으로서의 육아가 내 일상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삶이 고될지라도 잘 버텨서 좋은 엄마 좋은 아빠가 되기를 또 한사람의 아빠로서 바라게 된다. 그리하여 또하나의 행복한 가정이 만들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나도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있다. 여전히 진행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