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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호 Feb 11. 2022

아빠가 바라본 사교육

자녀 교육 문제 있어서 아빠들보다는 엄마들의 관심이 더 많다. 교육 문제에 있어서 아빠의 무관심과 경제력이 중요하다는 우스게 이야기에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 공감하기도 한다. 가끔씩 사교육이라는 현실을 비판함과 동시에 그 현실에 맞춰서 살아가는 저를 발견하게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1월말에 이사를 했고, 새로운 환경에 우리 가족들은 적응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점에서 이사온 환경은 외딴섬 같았다.  

  

날씨가 따뜻할 때마다 첫째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탔다. 옆 단지에 인라인을 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같은 또래의 친구를 만났다. 처음에는 서먹서먹 했지만, 자주 보면서 친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늘 할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만나면서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인라인을 탔고,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면서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 손녀의 엄마 아빠는 맞벌이에요. 제가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은퇴하고 자식 집 근처로 이사를 왔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면서 지냅니다.” 조금씩 아이를 알아가게 되고, 아이의 가정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참 돈이 많이 들어간 녀석이에요. 매달 삼백 만원 이상은 들어을 거에요. 영어 유치원에 다녔거든요. 학원이란 학원은 전부 다닌 것 같아요. 요즘은 우리 때하고는 다르더라구요. 정말 돈이 아이를 만드는 것 같아요. 현실이 그렇더라구요. 사립 초등학교 입학을 기다리고 있어요.”      

  

손녀의 자랑이 다소 섞여 있으면서도, 이렇게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이런 현실을 바꾼다기 보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에 맞춰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적인 할아버지의 말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가끔씩 아이와 마주쳤다. 코로나 상황이 생겨서 인라인을 타러 나가지는 못했고, 우리 아이도 학교에 가질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 피아노 학원을 가는 길에 아이를 만났다. 사립 초등학교는 일반 초등학교와 다르게 매일 학교에 갔고, 학교가 끝나면 할아버지는 손녀와 함께 학원을 같이 가주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내 아이를 보고, 또 그 아이를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이 교차했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 아이가 저 아이와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까?’였다. 교육의 목적은 자립인데,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사라져서 백수가 지천에 깔린 현실을 마주하면서 우리 아이는 나중에 뭘 먹으면서 살아갈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먼 미래의 일이지만, 저 아이는 저렇게 공부를 하는데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던 것이다.

  

코로나가 벌어지면서 우리 같은 아빠들의 경제적 상황도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에 있지 않다. 얼마나 투자를 잘하느냐에 따라서 자산의 증식은 개인의 경제적 상황을 차별적으로 만들었다. 이 세상에 차별은 나 같은 아빠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교육이 무너진 작금의 현실에서 ‘아이들 교육’만큼 불평등한 것이 어디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한다. 저 아이처럼 사교육이든 무엇이든, 어찌되었건 이 세상에 코로나가 왔든 오지 않았든, 공부는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답답했다.

  

뉴스를 봐도 세상의 자식 공부란 것이 말과 행동에서 차이를 드러냈다. 공교육 강화를 외치면서 자기 자식들은 특목고와 외고를 다니면서 유학을 보내는 정치인들의 기사를 볼 때마다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비판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 아이는 자라고, 그 사이에 현실은 바뀌지 않으니, 결국에는 내 아이의 미래만 어두워질 뿐이었다. 이제 초등학교를 시작하는 내 아이라서 아직은 미래를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니 그랬다. 과거의 잘못된 현실은 하나도 개선되지 않은 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까 나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내로남불. 그리고 각자도생.


  

첫째는 수영을 배운다. 어린이들 3~4명씩 그룹으로 운영하는 키즈 수영장이다. 한번은 아이와 같이 가서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영장 실내가 보이는 유리창으로 3~4명의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면서 수영을 배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참 행복해 보였다.

  

자연스럽게 나의 가난했던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어렸을 때 피아노 미술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죽도록 배우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부모님을 원망해본 적은 없었다. 아이가 크니 부모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은 알게 된다. 맛있는 것 먹이고 싶고, 좋은 옷 입히고 싶고, 교육도 빵빵하게 시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수영을 배우는 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것도 지복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아이로 성장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부모 마음이란 것이 가능하면 모든 것을 다 해주어도 모자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부모가 돼서야 비로서 느낀다. 아이를 키워보니까 그렇다. 어릴 적에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씩 우리 엄마는 “많이 가르쳐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그것이 부모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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