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들여 쓴 계획서 들여다보지도 않는다면 체크해야 할 세 가지
"사실 저는 계획서를 써놓고 안 봤어요."
나와 1년 여 동안 계획서 쓰기를 연습했던 수빈은 얼마전 내밀한 고백을 해왔다. 작년 1월쯤부터 전사 차원으로 계획서 쓰기 교육을 했다. 비전과 미션이 무엇이고, 목표와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수빈은 그 교육을 정말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다수가 듣는 일방향의 강의에서 자신의 체질에 맞게 변환하기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리더십, 실무, 여러 용어의 개념보다 계획서 쓰기 교육이 훨씬 어렵다. 이론 교육은 그럭저럭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론을 깨우치고 나서 실제 삶에서 내 계획서가 쓰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획서 쓰기가 할 일 목록 중 하나로만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조금 더 한 차원을 뛰어넘는 어른의 계획서는 인사고과 시즌이나, 워크숍 직전에 내년 성과를 쥐어 짜내는 식이다. 이렇게 쓰는 계획서는 제목 그대로 시간 낭비다. 계획서 쓰기를 위한 계획서에 불과하다.
일단 계획서를 어떻게 쓰는지를 고려하기 전에, 먼저 왜 쓰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1) 효율화 :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 업무와 업무 사이의 영향력과 상관관계를 고려할 수 있다
(2) 업무 범위와 목표 설정 : 나의 목표와 조직의 목표를 일치시키기 위해
- 나의 목표와 조직의 목표를 같은 방향으로 설정할 수 있다
- 목표 달성에 불필요한 업무와 우선순위를 정리할 수 있다
- 다른 사람이 나의 업무 스케줄을 숙지할 수 있다
(3) 역량 지표 설정 : 지금 현재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알기 위해
- 1주 전, 1개월 전, 1분기 전, 1년 전 나의 수준이 어떠했는지 점검할 수 있다
- 1주 뒤, 1개월 후, 1분기 후, 1년 후 나의 모습이 어떠할 지 예측할 수 있다
- 나의 업무 역량과 커리어 발전 단계, 비전과 미션을 직접 설정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은 1번을 위해서 계획서를 쓴다. 1번은 아주 중요하고 당연한 문제다. 하지만 계획서가 빛을 발하는 건 2번이 잘 되었을 때다. 계획서는 그렇게 살기로 약속하는 선서가 아니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정표이고, 언제든 끼어들 수 있는 세상의 변수에 맞서 그 속에 절대 바뀌어서는 안 될 방향이 무엇인지 내가 이해하고, 나의 조직이 이해하고, 나의 동료가 이해하게끔 하는 게 계획서이다. 우리 회사에서는 네 사람이 계획서를 작성하고 서로 메모를 달아 자신의 업무와 연동하거나 협업할 수 있는 부분을 나눈다. 서로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사전 합의 후 한 달을 함께 살아가자는 협동의 틀을 만든다.
3번은 계획서를 꾸준히 썼을 때 알 수 있는 효용이다. 워라밸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른 세상이지만, 나는 인생의 1/3을 회사에서 보내면서 일과 삶을 분리하는 법을 찾지 못했다. 일은 삶을 윤택하게 하고, 삶은 일의 의의를 알게 한다. 그 둘이 똘똘 뭉친 삶을 살면서, 적당한 휴식을 추구한다. 그러려면 계획서든, 내 일이 주는 현재의 의미를 기록해두어야 한다. 태생이 글쟁이인 나는 과거의 나의 기록을 보면서 내가 어땠고, 지금 어떠한지 알아가는 기쁨을 많이 누렸다. 계획서도 그렇게 쓰다보니, 일의 경과가 아니라 삶의 흔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도 계획서를 써야할 이유는 정말 많지만, 크게 이 세 가지의 이유에서 그 어떤 부분에서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계획서를 쓸 필요가 없다. 정 써야겠다면 그냥 메모장을 켜서 매일 업무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정도에서 만족하기를 권한다. 주도적으로 내 현재와 미래를 설정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도 계획서는 필요하지 않다. 타인이 주는 조건과 변수에 맞추어 일하면 되지 않는가. 내가 안내하는 계획서 쓰기는 철저히 나의 일과 삶에 중심을 찾기 위함이다.
"이제 실질적으로 저한테 도움이 되는 계획서를 어렵지 않게 쓸 수 있게 됐어요."
수빈은 나와 일한지 3개월 만에 계획서를 30분 만에, 자기 주관을 담뿍 넣어서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야근도 눈에 띄게 줄었다. 업무량은 오히려 늘었는데도 말이다. 수빈은 자신만의 계획서 쓰기의 '왜'를 찾은 듯 하다.
여러분도 늦지 않았다. 위 세 가지에 마음이 동했다면, 제대로 계획서 쓸 준비가 되었다. 이번 주에는 이 세 가지 항목에 맞추어 내가 왜 계획서를 써야하는지에 대해 집중해보자. 그러고 나면 이 다음에 이어질 '무엇을'에 대한 설명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화에서는 계획서 예시 템플릿을 공유해서 실질적인 무엇을, 을 쓰는 방법을 공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