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섬진강 매화마을 다녀오다.
시골쥐는 서울쥐가 몹시 부럽다.
다양한 문화생활, 고궁과 박물관, 미술관, 서울도보해설여행, 북한산 들레길 등 은퇴 후에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젊은 시절부터 서울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지만 현실로 이루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남도에 꽃피는 봄이 오면 서울쥐 부럽지 않다. 광양 매화마을 매화꽃, 구례 산수화꽃, 하동 쌍계사 벚꽃, 거제 공곶이 수선화, 황매산 비슬산 철쭉꽃, 거제 지심도 동백꽃뿐만 아니라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 그리고 남파랑길 까지...
오늘은 부인과 함께 광양 매화마을을 다녀온다.
< 섬진강 이야기 >
섬진강(蟾津江)의 유래가 궁금하였다.
섬(蟾)은 두꺼비란 뜻이다. 진(津)은 나루이다. 즉 두꺼비 나루 강이다. 1385년(우왕 11) 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 한다.
또한 두꺼비에 관한 설화도 있다.
마을에 착한 처녀가 살았는데 집에 나타난 두꺼비가 불쌍해 보여 밥을 주고 쉴 집을 마련해 주어 같이 지내던 중 섬진강이 불어 마을의 집이 물에 잠기고 사람들이 떠내려가던 중 처녀도 같이 휩쓸려내려갔다고 한다. 이때 함께 생활하던 두꺼비가 나타나 등을 내어주고 온 힘을 다해 뭍으로 처녀를 옮겨놓은 뒤 너무 지쳐서 두꺼비는 죽었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은 두꺼비 섬(蟾)을 사용하여 두꺼비 나루라는 뜻으로 섬진으로 불렀다고 한다.
< 홍쌍리 명인과 매화 이야기 >
봄이 오면 인기가 많아지는 ‘엄마’가 있다. “매화꽃아 니는 내 딸이제, 매실아 니는 내 아들이제”라고 말하는 홍쌍리(82) 명인이 그 주인공이다. 한 해 120만 명의 상춘객이 그녀가 있는 전남 광양의 매화마을을 찾는다.
1966년 홍쌍리 명인이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현재의 매화마을이 됐다. 그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수놓는 매화의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손님들을 초대했다.
“스물네 살에 산에서 일하다 외로운 산비탈에 홀로 핀 흰 백합꽃같이 살기 싫어서, 사람이 보고 싶고 그리워서, 매화꽃을 심었어요. 5년이면 꽃이 피겠지, 10년이면 소득이 있겠지, 20년이면 세상 사람 내 품에 다 오겠지, 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홍쌍리 명인은 1943년 밀양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를 어린 나이에 여의었고, ‘엄마 없는 가난’을 겪었다고 표현했다. 현재도 각종 방송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홍 명인.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 불렀고, 가수로 키우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딸을 가수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딸을 부산 삼촌 집으로 보내버렸다. 삼촌은 건어물 장사를 했는데, 밤을 팔러 왔던 시아버지 율산 김오천 선생이 홍쌍리 명인을 보고 첫눈에 마음에 들어 했다. 홍 명인을 며느리로 안 주면 밤을 안 주겠다고 했단다. 그렇게 경상도 여인은 전라도로 시집가게 됐다.
홍쌍리 명인은 시집온 이듬해부터 매실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아버지의 반대를 꺾기 힘들었다. 그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밤나무를 베고 매실나무를 심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시아버지는 홍 명인이 씻겨주고, 안마해 주고, 노래를 같이 흥얼거리다가도 ‘매화’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시아버지는 홍쌍리 명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더욱이 법정 스님이 찾아와 ‘꽃 천지를 만들라’는 말에 홍쌍리 명인은 더 많은 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매실 사업을 시작한 지 6년이 됐을 때, 부산 대선 소주에서 홍매실주를 만들었다. 홍쌍리 명인의 매실로 만든 매실주다. 그때 번 돈은 137만 원. 홍쌍리 명인은 그 숫자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더불어 이때 비로소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인정해 줬다.
홍쌍리 명인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시아버지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자수성가했고, 명품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더불어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사람도 시아버지다. 홍 명인은 시아버지가 없었다면 현재의 자신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세한삼우(歲寒三友)와 선조들의 매화사랑 >
나이가 들어가면서 화려한 꽃보다 동백꽃과 매화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모진 추위를 이기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매화, 동백꽃은 선비의 절개, 용기, 의지, 희망과 기다림을 상징해 예부터 동아시아에서 고결한 존재로 여겨진다.
예부터 대나무(竹), 소나무(松), 매화(梅)는 ‘추운 겨울에도 한결같은 벗’이라 하여 세한삼우(歲寒三友)라 일컬어왔다. 매화(梅)는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도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눈 속에서 꽃을 피워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조선 선비들의 매화 사랑은 유별났다. 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申欽, 1566~1628)은 그의 시 야언(野言)에서 ‘매화는 일생을 추위에 떨어도 결코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라고 하며 옳지 않은 세속과 타협하지 않는 지조를 매화에 빗대어 예찬했다.
선비들은 추위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고결한 향기를 내뿜는 매화에 자신의 마음을 투영했다.
성리학을 체계화한 대학자인 퇴계 이황은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 유언으로 "화분의 매화에 물을 주라"라고 말했다. 그만큼 매화를 흠모했다.
퇴계 선생은 도산서원에 매화나무를 심고 싶어 했다. 매화를 가꿈으로써 그 어떤 것에 대한 집착에서도 벗어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한(歲寒)은 혹독한 추위를 말하기도 하지만 인생의 모진 시련을 뜻하기도 한다.
영원한 겨울은 없다.
낙 화 - 정호승
섬진강에 꽃 떨어진다
인생을 추위 속에 살아도
결코 향기는 팔지 않는 매화꽃 떨어진다
지리산 어느 절에 계신
큰스님을 다비하는 불꽃인가
불꽃의 맑은 아름다움인가
섬진강에 가서 지는 매화꽃 보지 않고
섣불리 인생을 사랑했다고 말하지 말라
표지사진설명: 2025.03.24. 광양 매화마을의 풍광이다. 섬진강이 좋아서 섬진강가에 사는 섬진강 시인이라고 불리는 분도 있다. 나도 브런치 스토리 1차 목표 100회 차를 완성하면 다음 목표로 디카시집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좋은 사진과 간단한 시를 활용한 시집, 인생이란 꿈이 이루어진 시간보다 항상 꿈꿀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산불로 인해 남부지방과 경북의성에는 소방관과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의 고충이 많다. 지역주민들은 슬픔과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은퇴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봉사단체를 만들어 지역과 국가가 위기 상황에는 자원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나도 꽃구경 대신 봉사 활동에 참여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