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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다니엘 Sep 24. 2022

리스타트 51 - (39)

넘버 원


“전 괜찮아요, 어머니. 실망스켜 드리지 않을게요.” 


“얘야. 우리가 지금 너의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라는 말 때문에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 


아버지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그런 우려의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을 나는 처음 들었다. 


“그럼요, 아버지. 하지만 이 일은 제가 꼭 하고 싶은 일이라서요.”


부모님께서는 내게 더 이상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내가 짐을 싸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과 함께 보스턴 로건 공항에 가서, 어느 비행사 카운터에서 체크인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그곳에서 받아 든 비행기표를 한 손에 든 나는 다른 쪽 어깨에 가방을 걸쳐메고는 여러 개의 출국 게이트 중 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그 출국 게이트로 들어가기 직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나를 바라보고 계셨던 부모님의 눈들과 마주쳤다. 두 분께서는 눈물을 흘리시진 않으셨고 나 또한 그러했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왜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두 분께 손을 흔들어 드렸고, 두 분께서도 내게 손을 흔들어 주셨다. 


그리고 나는 등을 돌려서 출국 게이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로서는 다시 한 번 뒤로 돌아서서, 그때까지도 내 모습을 응시하시고 계셨을 부모님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빗방울들


그날따라 보스턴 지역에는 이른 아침부터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그 장대비는 내가 뉴욕행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도착해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로 다시 갈아탈 때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뉴욕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침 창가 자리로 좌석을 잡은 나는, 이륙 준비를 하고 있던 비행기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들을 바라보았다. 정말 셀 수 없는 많은 빗방울들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중 대부분은 창문 아래쪽으로 흘러내렸고, 그런 빗방울들이 만드는 실낱같은 크고 작은 물줄기들은 또다시 다른 물줄기들을 만들어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이제 반나절 후면, 말 그대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그때 내 상황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오는 빗방울들일까? 그리고 저 빗방울들의 행렬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어떻게 생각해보면 나는 <The Secret of My Success>라는 영화에서, 마이클 제이 폭스라는 배우가 맡은 브랜틀리 포스터라는 주인공 역할의 영화 속 모습과 내가 닮아있다고 느꼈다. 내가 굳이 그 영화 주인공과 다른 점을 찾으라면, 그 영화 속에서의 주인공은 미국 중부에 있는 캔자스 주에서 버스를 타고 뉴욕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다니엘, 넌 솔직히 그 상황보다 나은 편이야. 넌 지금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향하고 있잖아.' 


하찮은 생각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그 당시의 내 기분을 긍정적으로 유지하려고 했다. 나는 또한 뉴욕에서 서울까지의 긴 비행시간 동안 그 영화 주제가의 가사를 여러 번 되뇌면서, 내게 익숙하지 않은 외국 같은 고국으로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긴장감과 우려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사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난 정말 괜찮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는 말 그대로 불확실한 세계로 뛰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 편으로는 내가 떠난 지 약 20년 만에 다시 내가 고국땅을 밟게 된다는 것에 대해 약간 흥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에 감싸인 상태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한국에 도착한 그날도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마치 내가 보스턴의 로건공항을 떠날 때 처럼, 그리고 다시 뉴욕의 JFK 공항을 떠날 때 처럼…


'안녕, 서울. 드디어 내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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