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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달리기

나 지금 뛰려고,라는 말이 '사랑해'라고 들리는 순간

by Dancing Pen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둘 다 학생이었다.

게다가 그는 휴학생. 우리에게 가장 많은 것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매일 만났고, 종일 같이 있었으며, 하루에도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했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케이크 하나를 시켜놓고 몇 시간을 보내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머물러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곳을 찾다가

나중에는 구립 도서관을 가기도 했다.


그렇게 종일 시간을 보내다 헤어져서 집으로 오는 길은

그 긴 시간이 무색할 만큼 서운했다.

1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여전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뛰기 시작했다.

유산소 운동을 통한 감량이 목적이라고 했다.

운동하는 것을 싫어하는 그였지만

그의 직업적 특성상 감량은 필수였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뒤

그에게 메시지가 온다.


'나 지금 뛰려고'


그의 집에서 우리 집까지,

뛰어서 온다면 30분 정도의 시간.

그는 뛰어서 우리 집 근처 초등학교로 온다.

그리고 초등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뛴다.

나 역시 운동장으로 향한다.

스탠드 한쪽에 앉아서 뛰고 있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운동장을 다 뛴 그는 내 옆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른다.

물을 마시고 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 그는 다시 집을 향해 뛰어간다.


뛴다는 그의 말이 내게는 '사랑해'로 들려온다.


사랑.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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