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은데 울곳이 없을때
나는 걸었다.
모자를 쓰고,
눈을 가려줄 안경을 쓰고
펑펑 울면서 걸으면
아무도 내가 운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니, 설사 알았다고 하더라도 잰 걸음으로 지나가는 나를 보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다 큰 어른이
이렇게 길에서 울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도 새삼 신기했다.
부끄러움도, 민망함도 없는 울음이다.
이 울음을 터트리지 않으면 내가 터질것 같아서
주변을 살필 겨를 따윈 없었다.
그날도 나는 엉엉 울면서 길을 걸었다.
그 길의 끝은 한강 고수부지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주저함 없이 한강길로 향했다.
가을의 차가운 바람과
평일 오후의 한가함은
더없이 울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얼마를 걸었는지도 모르게
한참을 걸으며 울었다.
바람에 눈물이 말라 얼굴이 다 트는 듯했다.
코는 얼마나 풀었는지 끝이 다 얼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