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올라간 그를 차 안에서 기다린다.
그의 지갑이 시트 한쪽에 떨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지갑 표면을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그는 나에게, 나는 그에게 지갑을 선물했다.
우리가 찍은 그 사진이 잘 들어있나, 지갑 속을 살펴본다.
사진 속 그는 참 예쁘게 웃고 있다.
그래, 그 해사한 웃음에 반해서 내가 여기까지 온 거지.
우리 사진 아래, 무언가가 겹쳐져 있음이 보인다.
반명함판 사진 속, 그녀는 누구일까.
누구길래...
그의 지갑 속에, 우리 사진과 함께 놓여있는 것일까?
손바닥 위에 사진을 놓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인데도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녀의 말이 보이는 듯하다.
어쩌면 나는 인정하지 않았을 뿐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사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의 지갑에 다시 넣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빼버릴 수도 없는.
사진의 뒷면에 짧은 글이 보인다.
'꼭 가지고 다녀요!-수연'
아. 수연이구나.
너의 이름은 수연이구나.
알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결국 알게 되어버렸다.
사진을 반으로, 다시 한번 반으로 접어서 나의 가방 안에 넣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갑은 원래 있던 자리에 둔다.
내 남자의 지갑 안에 있던 그녀는 이렇게 구깃해진 채로 나의 가방 안으로 들어간다.
이미 그는... 내 남자가 아닌 걸까.
우리는 이제 함께가 아닌 걸까.
이제 그 사실을 알아야 할 때가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