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재미있어지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 삶이 즐거운 순간들
by Dancing Pen Nov 29. 2024
하루하루 즐겁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학교에 데려다주고
서로의 수업을 기다리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은
특별한 것이 없어도 즐거웠다.
같이 줄넘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고수부지에서 수영을 하기도 하고,
한가한 평일 오후의 도산 공원을 걷기도 했다.
(그때의 평일 오후 도산공원은 그랬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와 함께한 작고 소소한, 일상적인 일중
우리가 가장 많이 한 일은 영화를 보는 일이었다.
여느 20대 커플과 같다고 할 수 도 있겠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우리는 대본을 함께 봤다.
드라마나 영화의 대본을 보는 것은 우리의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 역할에는 누가 어울릴까,
저 인물은 왜 이런 대사를 했을까,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다음에 나오는 대사가 무엇일지 내기를 하기도 하고,
영화로 나오면 좋을만한 소설은 무엇이 있을지 찾아보기도 하고,
실제로 예상이 들어맞는 순간에는 '에헴!' 하며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둘이서 대사를 주고받고
녹음을 해서 들어보고
흘러나오는 낯선 음색에 서로 질색하면서도
깔깔거리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어릴 적부터 드라마에 푹 빠져 지내던
'드라마키즈'인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변주된 형태의 모습을 지닌 내가, 그와 함께 있었다.
우리만의 드라마가 매일 계속되고 있었다.
더 이상 드라마는 재미있지 않았다.
순간,
두려워진다.
드라마가 다시 재미있어지는 삶이 내게 다가올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