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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일이 꼭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by Dancing Pen

불치병의 여자 주인공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자신의 첫사랑, 혹은 마지막 사랑을 찾아달라는 이야기.

많은 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된 이 클리셰가 내 앞에 펼쳐졌다.


여름날, 햇볕이 적당히 뜨겁던 어느 여름날

그가 전화를 받는다.

가벼운 웃음은 사라지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한다.


왜일까.


아직 시간이 이른데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묻자

가야 할 곳이 생겼다고 한다.

나는 토라진다.

왜, 어디를 가는지 말해주지 않고 그냥 가야 할 곳이 생겼다는 그의 말이

나를 서운하게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어색하게 헤어진다.


그리고 그는 연락이 없다.


밤새 감정이 파도를 친다.

머리는 복잡해서 터질 듯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아침이 되자마자 그에게 간다.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그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뗀다.


"얼마 못 산대..."

"누가?"

"우리 과 후배 @@ 생각나?"

"이름 생각나. 너 좋아한다고 했던 여자 후배잖아. 맞지?"

"응... 걔가 아프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인데 나를 꼭 한번 보고 싶다고 그랬나 봐..."

"무슨... 지금 영화 찍어? 갑자기 그게 말이 돼?"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제 병원 다녀왔어... 진짜더라고... 그런데 이 얘기를 너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듣고도 황당했다.

창의적인 핑계인가.

진부한 변명인가.


동시에

나 자신이 싫어졌다.

만약 누군가가 진짜로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내 남자를 보고 싶어 한다면

나는 기꺼이 보내 줄 수 있는 사람인가.

자신이 없었다.

이런 나를 알았기에 그는 어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걸까.


내 남자가...

나에게만 특별하면 안 되는 걸까.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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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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