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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Apr 25. 2022

모두의 쉼터

공원에서 서평


 공원은 공평할 공, 동산 원, 두 한자가 결합한 단어이다. 단어 의미로 미루어 봤을 때, '모두가 공평하게,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 그것이 공원의 본질이라 볼 수 있다. 쉬고 싶을 때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곳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런 장소가 없다면 삶은 윤택할 수 없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개인은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한다. 


 2022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김지연 작가의 '공원에서'(이하 본작)은 공원의 성질을 면밀히 따져보며 작품을 전개한다. 공원 이외에도 여러 단어 및 오래된 속담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현실 속 각종 혐오와 편견을 마주하기도 한다. 아직도 여성 혐오적 표현이 난무하고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리기까지 하는 실태에서 주인공 '수진'의 공원은 어디에 있을까? 


 도시에 왜 공원이 필요한지도 알 수 있었다. 건물들로 빈틈없이 빽빽한 곳에는 반드시 녹지가 필요했다. 


 '수진'이 애인인 '기영'을 보러 다니는 길에 공원은 지름길이었다. 공원을 가로질러 가면 일찍 도착할 수 있지만 여자 혼자 지나다니기 위험하다는 이유로 '수진'은 대로변으로 다녔었다. 그러나 어느 날 굳이 공원을 지나갔다. 그때 공원은 '수진'이 상상했던, '기영'이 위험하다 경고했던 곳이 아니었다. 공원의 정체는 고즈넉한 시민들의 쉼터였고, '수진'은 그러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원래 '기영'을 더 일찍 보기 위해 공원을 통해 간 것이었지만, 공원의 매력에 빠진 '수진'은 '기영'을 보기 전 10분씩 앉아 있다 가기도 했다. 


 마치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자꾸 물어봐서 그냥 바람을 쐬고 싶어서 공원에 갔던 거라고 말했다. 경찰도 내게 그걸 물었다. 어디 가는 길이었습니까. 


 '수진'은 공원에서 이름 모를 남자에게 폭행당했다. 그 이전에 '수진'은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고, 화장도 안 하고 다닌다고 한 노인에게는 여성스럽게 다니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한 남성의 일방적인 구타와는 충격의 크기가 달랐다. 취객은 '수진'에게 여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었고, 그것이 불씨가 되어 일이 벌어졌다. '기영'은 '수진'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기도 했지만, 일부 사람은 '수진'에게 다른 것을 집요하게 물었다. '수진'에게 그런 질문은 마치 '네가 그 길로 가서 맞은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한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 좀 마! 그 사람은 정말 나를 개 패듯 팼다고!" 


 '수진'은 문득 이런 말을 뱉고 생각했다. 일상적으로 자주 쓰는 '개'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양가적이었다.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일순 욕설로 바뀌어버리는 그런 단어였다. 언어라는 것은 결국 사회적인 약속이다. 우리가 '개'를 욕이라고 규정하고, 욕이라고 인식하기에 비속어로 사용하는 것뿐이다. 본작은 이런 인식을 여성혐오로도 연결했다. 여자는 사흘을 안 때리면 여우가 된다, 여자는 익은 음식 같다 등처럼 일반화된 혐오 표현은 전통적인 한국 사회에서 개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한다. 


 내가 겪은 모든 모욕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복해내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는 게 좋다. 


 하지만 '수진'은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수진은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하다 느껴지는 일을 겪어도 이겨냈다. '수진'에게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삶은 그만큼 가치있는 것이다. 


 나는 개를 쓰다듬었다. 개의 이름은 토리이고 토리는 아주 사랑스럽다. 그것이 아주 개답다고, 개 같다고 생각했다. 


 개 같은 삶에서 아이러니하게 개에게 위로받았다. '토리'라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계속 이러고 싶다 속으로 되뇌인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받기 때문이었으리라. 


 공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딘가에 존재한다. '나'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며 상식적인 일이더라도, 어딘가에 사는 또 다른 '나'에게는 꿈 같은 일일 수 있다. 산재해 있는 수많은 '나'들이 스스럼없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우선 최소한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쉴 수 있는 장소가 공유될 수 있기를  수 있기를 말이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문학동네 

작가 :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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