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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May 05. 2022

사랑이 끝나는 시점

골드러시 서평


 끝은 결과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다양하겠지만, 덤덤하게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는 시선이 가장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그래야 더 나은 방향을 도모하기 위해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모든 경우가 바람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과를 그대로 읽지 못하고 잔뜩 미련이 남아 잘잘못을 따지며 책임을 전가하는 그런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그건 아마 '끝'이라기 보다는 '끝나고 있는 도중' 혹은 '끝에 한없이 가까워지고 있는 중'인 상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련이라는 감정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아직 끝내지 못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


 2022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서수진 작가의 '골드러시'(이하 본작)는 사랑의 끝에 다다른, 비로소 끝을 인지한, 한 부부의 모습을 19세기경 성행했던 '골드러시'에 빗대어 그리고 있다.


 진우는 운전석에 올라 앞에 펼쳐진 길을 바라보았다. 길 끝에 물웅덩이가 있었다. 신기루였다.


 '진우'와 '서인'은 결혼한 지 7년 동안 기념일 한 번 제대로 챙겨본 적 없는 부부다. 맨손으로 먼 타지인 호주로 건너와 터를 잡았기에 더 그런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진우'도 영주권을 얻기 위해 노력했고, '서인'도 그런 '진우'를 도왔다. 영어가 부족한 '진우' 대신 '서인'이 영어 시험을 봤고, 영주권을 얻었다. 이제 '진우'는 '서인'과 혼인신고를 했기에 동반자로서 한시적으로 비자만 발급받은 사람이 됐다. '진우'의 영주권은 '서인'과 같이 지내면 자연스럽게 나올 예정이었다. '서인'이 바람피우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한 듯 보였다.

 '서인'은 외로웠다고 고백했다. '진우'가 일 때문에 '서인'을 잘 챙겨주지 못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서인'은 바람을 피운 어린 남자를 사랑해 같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 말했지만, '진우'는 그런 '서인'에게 무릎을 꿇었다. '서인'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진우'의 영주권은, '진우'가 영주권을 위해 노력했던 모든 시간은, 물거품이 되기에 '진우'의 행동은 당위성이 충분했다.


 먹지도 않는 채소들이 가득한 뜰과 보기 흉한 잡초로 뒤덮인 뜰 중에 무엇이 더 나쁜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은 흘러 '서인'은 그 어린 남자와 관계 끝내고 '진우' 옆에 남았다. 같이 장기 주택자금 대출을 받자고 제안한 것도 '서인'이었다. '서인'은 마당에 채소를 기르며 식탁에 올렸지만 그것을 '진우'가 먹는 일은 없었다. 텃밭이 잡초로 무성해질 때쯤, 아니 어쩌면 그 전에,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쯤은 둘은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골드러시는 반값 행사 중인 패키지여행 상품이었다. 둘은 여행을 떠났다. 가이드 안내에 따라 이것저것 체험하고 만지고 느꼈다.


 진우는 이미 끝나버린 금광의 역사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고작 18년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았던 골드러시의 찬란한 역사는 '잔우'애게는 이제 옛것일 뿐이었다.


 "캥거루가 살아있다고."

 서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죽었어."

 진우는 차를 출발시켰고 엑셀을 밟았다.


 패키지여행에는 렌터카를 몰고 직접 사막을 지나갈 수 있는 상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 '진우'는 운전 중 갑자기 튀어나온 캥거루를 친다. 차에 치인 캥거루를 본 둘의 태도는 상반된다. 이는 곧 둘의 관계의 현실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죽은 캥거루처럼 둘 사이 감정도 모두 죽었다고 느끼는 '진우', 그래도 아직 숨이 붙어있다 희망을 품는 '서인', 생사는 모호하지만 둘 다 그 캥거루가 건강하게 다시 뛸 수 있다고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끝이라는 것은 이미 다 마무리가 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는 알 수 없다. 학창 시절 수십 차례 겪었던 시험이 그러했듯 채점하는 순간 비로소 점수를 알 수 있다. 결과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시점, 그때 우리는 맘 편히 '끝났다'라고 말할 수 있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문학동네

작가 : 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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