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용 May 02. 2022

열등감의 가격

미애 서평


 열등감은 삶 곳곳에 숨어있다. 어리고 예쁜 아이돌의 성공, 한참을 걸어 다녀도 끝이 없는 집을 비추는 관찰 예능, 한 다리 건너 알던 어떤 이의 꽤나 높은 연봉, 오랜만에 만난 이의 표정에서부터 흐르는 여유까지. 열등감은 나열한 것보다도 훨씬 다양한 곳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다. 이런 감정을 크게 느끼지 않는 축복받은 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굳이 느끼지 않아도 되는 부러운 자들도 있을 것이지만, 슬프게도 이런 감정조차 사치인 부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느끼고 질투하는 데에 힘을 쏟기에는 당장 밥벌이가 걱정이어서, 그럴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다. 관찰 예능을 볼 시간도 없고, 연락해 올 친구도 없는 하루하루 연명하는 가난한 이에게 열등감은 너무 비싸다.


 2022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김혜진 작가의 '미애'(이하 본작)는 양극단에 놓인 인물 사이 일부 감정이 교환되는 지점을 포착했다. 풍족한 가정 환경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선우', 당장 힘겨운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자존심도 뭉개는 '미애', 둘 사이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그 간극은 둘 각자 이익 실현을 위한 알맞은 거래 조건이었다. '선우'는 '미애'와 가깝게 지내며 도우면서 자신의 선함,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알량한 만족감이나 우월 의식에서 발현한 질 낮은 동정으로 비칠 수 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실제로 '미애'는 당장 자신의 딸 '해민'을 맡아주며 여러 방면 도와주는 '선우'가 필요했다.


 그들에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그렇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을 지켜나갈 여유가 있었다.


 '미애'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선우'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어느 순간부터 동정에 가깝다는 것은,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확연히 드러났다. 그래도 괜찮았을 뿐이다. '감히 네가 뭔데?'라는 대사는 입 밖으로 뱉어낼 수 없었다. '선우'에게 말 한 번으로 지켜내야 할 자존심 따위보다 더 값진 것을 받고 있었다. '미애'는 3개월 동안만 친구네 집 아파트에 머물 수 있는 상황이었고, 당장 200만 원 대출의 신원 보장을 위해 연락을 끊었던 가족들에게 전화해야 하는 위치였다.

 그러나 '선우'의 배려로 찾아온 잠깐의 안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같이 놀고 있던 둘의 자녀, '해민'과 '세아'가 잠깐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선우'는 원인으로 '해민' 아니, '미애'가 처한 환경을 지목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함부로 밖에 나간 적 없던 '세아'가 '해민'과 놀기 시작하면서 사고를 쳤다는 이유로 '선우'는 '미애'를 내쳤다. 마치 '이래서 격이 맞는 사람끼리 교류해야 해.'라는 선 긋기였다. 이 사건을 빌미로 '선우'는 독서 모임에도 나오지 않았다.


 내 생각엔 아줌마보단 세아랑 말이 더 잘 통할 거 같아. 그치?


 '해민'의 순수한 질문에 '미애'는 명확한 답을 줄 수 없을 것이다. '해민'과 '세아'는 화해하고 서로 놀 수 있을 테지만, '선우'가 '미애'를 받아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쉬운 것이 없었다. '미애'가 오히려 '선우'를 애타게 찾아가서 괜찮다고 말해도 '선우'는 자신을 용서하지 말란 식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돌려보냈다. '선우'에게 '미애'는 자신의 자녀 '세아'에게 보여줄 교보재였을 수도 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 가르침을 주기 위한 도구가 '세아'에게 되려 영향을 준다는 것은, '선우' 입장에서는 상정하지 않은, 그야말로 불쾌한 상황이었을 테다.


 열등감을 느끼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장의 여유일 수 있다. 키보드로 투닥거리며 열등감을 표출하는 이도 그 순간을 할애할 수 있기에, 그 이전에 그런 감정을 느낄 만큼의 시간적이나 감정적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열등감조차 허락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선우'가 말하는 환경 보호나 타인에 대한 동정은 너무 먼 이야기다.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데, 더 멀리 보고 행동하라며 가르치는 것은 배려가 없는 행동이다. 심지어 일반적으로 따지면 정의롭고, 지당한 가치를 앞세워 말하니, 그럴 여유가 없는 '미애'에게는 폭력적인 언행이다. 그냥 살아가고 있는데, 일순 자신을 정의롭지 못 한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느낌에 가깝다.


 북극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섬을 없애기 위한 노력, 이번 달 월세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 둘 다 의미가 깊다. 더 나은 세상을 후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범세계적인 가치를 함양하는 활동, 오로지 '나'의 생만을 위한 활동, 입장에 따라 둘의 무게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개인의 판단에 따라 더 많이 가라앉은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독극물을 먹으면 죽는 것을 알기에 피한다. 누군가에게 열등감은 독일 수 있다. 자신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서 기피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약간의 여유, 내성이 생기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올 수 있는 감정이다. 당신이 어떠한 것에 열등감을 느낀다면, 그건 단순히, 그 정도 감정적 여유는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문학동네

작가 : 김혜진

이전 04화 모두의 쉼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