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용 Apr 21. 2022

 '우리'라는 우리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서평


 나, 우리, 너, 너희. 인칭대명사는 자연스럽게 범위를 규정한다. 한정된 틀 안에서만 개념이 성립한다는 듯이 우리는 선을 긋는다. 앞서 말한 '우리'도 사실 이 글을 읽지 못하는, 필자와 독자를 아우르는 문화권을 공감하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언제는 전 세계인을 통틀어 '우리'라고 하고, 또 언제는 단 두 명만이 그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꽤 매력적이다. 별거 아니라 생각해도 '우리'에 소속되는 순간 생기는 안정감은 무시할 수 없다. 규모가 큰 '우리'는 그렇지 못한 '우리'에 비해 영향력이 크기에, 전자에 속하고 싶은 마음은 지극히 평범하다. 그리고 규모가 큰 '우리'의 이야기를 보통 '일반적','대중적' 등으로 치켜세운다. 민주주의에 있어 다수의 의견은 꽤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소수를 억압하는 다수'라고 말하면 폭력적이지만, '일반적인 의견에 공감하지 못하는 별종'이라고 하면 문제아처럼 보인다. 두 문장은 표현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는 그렇게 다르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해한다. 


 2022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김병운 작가의 단편소설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이하 본작)은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동성애자인 '윤범'이 무성애자인 '주호'에게 무지로 인한 폭력을 가했다는 것을 깨닫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라 줄여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요약도 옳지 않다. 소설 기저에 있는 '어떻게 해야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섬세한 고민을 무시하는 행위에 가깝기 때문이다. 


 뭐든 그런가보다 하며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렇게 의심하고 분별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윤범'과 '주호'는 과거 성소수자 독서토론회에서 만났다. 소설가인 '윤범'은 오랜만에 '주호'를 만나게 되는데, '주호'의 옆에는 여자친구인 '인주씨'가 있었다. '윤범'은 '주호'가 동성애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낀다. 예전부터 '주호'는 자신을 양성애자라고 소개했지만, '윤범'은 내심 '주호'가 동성애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인주씨'는 '윤범'과 '주호'의 관계를 의심했다. 그래서 한 번은 '주호'를 미행했다고 고백한다. '인주씨'에게 '윤범'을 만나러 간다 거짓말했던 '주호'는 '윤범'을 만나지 않았지만, 과거 둘이 같이 다녔던 행적을 복기했다. 


 그럼 결국…… 아무 일도 없던 거네요? 

 그런가요? 


 '윤범'도 알고 있었다. 그런 복기가 의미하는 것이 비록 당일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나, 과거에 존재했던 일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분명 뭔가 일어났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인주씨'는 '주호'가 여러 차례 '윤범'의 소설을 읽었다고 했다.  


 차라리 무성애자였으면 좋겠어. 

 아무 감정도 못 느꼈으면 좋겠고 누구도 사랑할 수 없으면 좋겠어. 


 '윤범'은 후에 자신이 소설에 상술한 문장을 적어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소수자인 자신이 그보다 더 소수자인 무성애자를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써 내려간 폭력적인 문장이었다. '주호'가 무성애자였다고 고백했기에 더 눈에 들어온 것일 수도 있지만, 명백한 실수이자 잘못이었다.  


 그럼에도 '윤범'은 일종의 용서를 받는다. 같은 무성애자인 '인주씨'가 '윤범'에게 자신들의 이야기, '인주씨', '주호', 그리고 '윤범'을 '우리' 안에 묶어 소설로 써주길 바랐다. 아직 '윤범'은 그 소설을 쓰지 못했지만, '인주씨'가 말한 대사만은 지우지 못하고 있다.  


 쓰면 좋겠어요. 우리에 대해 쓰면 좋겠어요. 


 본작은 '우리'에 주목한다. 말로만 '우리'의 범위를 넓혀가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지금은 '우리'가 아닌 다른 '우리'를 이해하려 한다. 그렇다. 본작은 '너희'가 아니라 그저 다른 '우리'라는 것을 이해하는 과정이고, 그 중요성을 시사하는 작품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지로 인한 폭력을 경계해야 한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문학동네 

작가 : 김병운

이전 02화 무쓸모의 역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