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효용 가치를 중요시한다. 책 한 권을 읽더라도 뭐 하나 얻어갈 것이 있는지 따져보고 그것이 본인에게 무슨 이득이 되는지 고민한다. 사실 독서 자체는 경쟁력이 떨어져 이제 문학을 향유하는 이는 사실상 희귀종이 되어버린 시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주일 내내 고민하고 홀로 의미를 파악하며 책을 읽는 행위보다는 그 책을 알기 쉽게 10분 내외로 설명해주는 유튜브 영상에 더 끌리기 마련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만 원짜리 상품을 구매한다 가정해보자. 구매하려는 제품이 구매자 기준 만 원 정도 가치를 지니고 있다 느껴지면, 망설임 없이 값을 지불하고 제품을 들여올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구매는 불발될 것이다. 사실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이야기다. 자본주의 시대를 표류하는 우리에게 이런 시장 논리는 진리에 가까울 정도로 기준이 되어주는 이론이다. 그리고 굳이 돈으로까지 환산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득이 되는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이러한 시장 논리의 확장이라고 조심스럽게 주장해 본다.
2022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김멜라 작가의 '저녁놀'(이하 본작)은 무쓸모의 가치를 역설한다. 무쓸모의 가치, 언뜻 보면 어폐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쓸모가 없다는 말은 가치가 없다는 말과 일부분 뜻을 같이한다. 그렇다고 완벽한 동의어는 아니다.
한땐 그렇게 생각했다. 내 존재가 어떤 목적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본작 작중 화자는 레즈비언 커플이 구매한 한 성인용품이다. 남근을 본떠 만든 화자, '모모'는 두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신을 구매해놓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두 여자를 욕하기도 하고, 쓸모없음에서 발현된 존재론적 위기감을 극복하기 위해 독서를 하기도 한다. '모모'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했다.
두 여자는 '모모'를 버리려고 박스에 넣어뒀는데, 거기에 인류 위대한 유산들도 같이 있었다. 쇼펜하우어, 루소, 니체, 아도르노의 책들, 바로크, 낭만주의, 모더니즘에 이르는 예술사에 관한 책들과 '모모'는 같이 놓여 있었다. 그 순간, 모모는 이해했다.
쓸모없음이야말로 인류가 지켜가야 할 빛나는 보석이었다.
본작을 읽고 존재는 무엇인가 의문이 들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쓸모없다는 말은 사형선고 비슷한 맥락이라 가정해 봤다. 편의점에 들러 1300원짜리 삼각김밥을 하나 사서 먹었을 때, '참 맛없다', '돈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삼각김밥은 구매자에게 쓸모없는 상품일 것이다. 앞서 말한 논리는 백만 원짜리 가전제품이나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차량에도 적용할 수 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 서비스, 제품 등에 적용되는 논리라면, 사람도 돈으로만 환산할 수 있으면 적용될 수 있는 말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어떤 이가 매달 혹은 매년 얼마나 버는지 기준으로 사람을 돈으로 환산하고 있지 않은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 꼭 쓸모 있을 필요는 없다. 쓸모없이 존재하는 것은 오히려 신비롭다. 이렇게 치열한 시대에 어쩌면 이렇게 하등 쓸모없이 하찮게 존재할 수 있을까! 이런 식의 감탄은 정상이다. 우리의 21세기의 본모습이기에 그렇다. 그렇기에 무쓸모가 역설하는 가치가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비논리적이며 무한히 무가치한 그 어떠한 것, 우리는 무쓸모가 던지는 존재 가치의 역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문학동네
작가 : 김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