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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 Apr 14. 2022

낯선 삶 이해하기

초파리 돌보기 서평


 소설을 왜 읽을까? 어렸을 적에는 학교 수업이어서, 독후감 숙제여서, 부모님이 욕심부려서 등 타의적인 이유가 컸을 수도 있다. 그렇게 억지로 책을 읽던 아이는 점점 자라서 성인이 된다. 본인의 뜻이 없으면 굳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되는, 자기 결정권이 있는 그런 성인 말이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는 성인은 아직 많다. 단순히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일 수도, 근본적으로 책이 재미있어서 읽을 수도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소설을 읽는 행위는 가치 있다. 독서는 경험이며, 그 중 굳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간접적인 영역과 직접적인 영역 가운데 있는, 일종의 체험과 가깝기 때문이다. 


 소설은 기시감을 동반한다. 독자는 한 번도 겪지 않았고, 살면서 겪어보지 못했을 소설 속 내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살아보지 않은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귀하다. 생판 모르는 남의 삶 속 깊이 잠깐이라도 들어갔다 나오는 것 자체만으로 생각의 폭은 조금씩 넓어진다. 이해하지 못했던 누군가가 갑자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2022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구매해서 수록작 하나하나 서평을 적어보려고 하는 것도 앞서 말한 이유가 강하게 작용한다. 과거에는 틈날 때마다 신춘문예 수상집이나 타문학상 수상집 등 한 권씩 사서 읽었다. 해외 문학 속 솔직히 공감 가지 않은 지명과 농담에 절여졌다는 착각이 들었을 무렵, 작품마다 담겨있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한국다워서 더 눈길이 갔다. 매년 나오는 수상작을 보고 있노라면 아, 내가 사는 한국이 이런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임솔아 작가의 초파리 돌보기(이하 본작)에는 어딘가 존재할 중년 여성의 삶이 녹아있다. 작중 인물 '이원영'은 생계를 위해 안 해본 일이 없고, 가족을 위해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지극히 평범한 누군가의 어머니를 닮았다.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알바 자리만 전전하다 텔레마케터 일을 시작했을 때, 처음 자신 자리가 생긴 것이 좋았을 것이다. 막상 하는 일이 욕받이였어도 '자신 고유의 것'이라는 말은 달콤했을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과학기술원 연구동 알바를 하게 됐을 때는 더 큰 만족감을 느꼈을 터이다. 실험체로 쓰일 초파리를 관리하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돌본 초파리들이 자신도 가보지 못한 해외로 뻗어나갔을 때 '이원영'은 사명감마저 들었을 수도 있다. 


 초파리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 보석보다 아름다웠다. 살아 있었으니까. 


 타인을 위한 희생 이전에 자기만족을 위한 행동은 '이원영'에게는 낯설었다. 그래서 '이원영'의 눈에 현미경으로 바라본 초파리는 아름다웠다. 얇은 날개, 붉은 눈, 나약한 다리, 쓸모없어 보이는 이 모두는 '이원영'에겐 의미였다. 살아있는 초파리를 관찰하는 '이원영'이 느끼는 것은, 과거 어떤 때보다 확실히 자신이 살아있다는 생동감이었을 것이다. 모종의 이유로 심각한 탈모가 생기고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졌어도 연구동에서의 나날은 소중했다. 딸인 '권지유'가 '이원영'이 아픈 이유를 연구동이라 아무리 의심해도 '이원영'이 아니라고 단언한 것은 단순한 고집 때문이 아니었다. 간신히 찾은 삶을 부정당하는 것은 누구도 쉽게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초파리 실험동은 원영의 꿈이 이루어진 곳이었다. 


 본작을 읽고 나서 든 첫 감상은, 물론 오랜만에 국내 소설을 읽어서일 수도 있지만, 글이 어떻게 소설이 되어가는지 과정을 지켜본 느낌이었다. 혀로 느낄 수 없는 말맛을 눈으로 상상으로 충분히 음미하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쁜 것은 또 이렇게 하나의 낯선 삶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생경했던 사건, 인물 등이 본작의 끝에 다다랐을 때는 마치 직접 겪었던 일처럼 느껴지는 경험은 늘 새롭다. 새로운 것을 느긋하게 흡수하는 것, 그것이 소설을 읽는다는 의미를 조금 풀어서 설명한 게 아닐까 싶다.  


 소설은 '나'가 아닌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이해해 보기 위해서 읽는다. 이해 가능 범위를 조금씩 늘리는 것은 삶에 편안함을 선사할 수 있다. 최소한 '쟤는 대체 왜 저러지', '아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같은 단발적인 분노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기는 포용력만 있으면 불가능한 소리도 아니다. 


-도서 정보


출판사 : 문학동네 

작가 : 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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