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허세도쿄 17화

우리 동네인 척, 오모테산도 산책

허세 30%, 진심 70%의 도쿄 산책

by Asparagus



도쿄에 살다 보면, 동네마다 마음 붙이는 속도가 다르다.

누군가에겐 시부야일 수도 있고, 긴자나 나카메구로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오모테산도다.


이 근방을 걷고 있으면 묘하게 편하고, 아주 적당히 즐겁다.

“이 동네, 내 집 같아.” 허세 섞인 말 같지만,

진심 70%, 허세 30%쯤 되는 감정이다.


심지어 가끔은 건물 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이 카페, 나중에 인수하고 싶다'는 망상까지 한다.

마치 이 동네 건물주인 것처럼.


처음 오모테산도와 친해진 건, 생각보다 단순했다.

팔뚝에 잔근육이 매끈하게 붙은 여자가 멋있어 보였고,

‘운동하는 여자’라는 말, 괜히 있어 보이지 않나.

그래서 회사 근처 피트니스 센터에 1년치 등록을 해버렸다.


미의식 때문이 아니라,

일시불로 나간 돈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 선택은 꽤 괜찮은 습관을 만들었다.

운동을 마친 뒤 허전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나는 자연스럽게 오모테산도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일본에선 < 오모테산도 산책 >이라는 말이,
하나의 트렌드 키워드처럼 떠다닌다.
유튜브 콘텐츠의 제목이 되기도 하고,
잡지 표지 구석에 은근히 자리 잡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오모테산도 산책은

그런 유행과는 무관하다.

애초부터 내 하루 속에 스며 있던,

그냥 자연스러운 생활 리듬일 뿐이다.


“주말에 뭐 해?”


“운동하고, 오모테산도 산책.”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는다.
가끔은 “오~ 오샤레네(근사하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럴 땐, 잠깐이나마 근사한 도쿄 온나(여자)인 척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사실, 그건 꾸민 것도 아니고
허세라고 부르기엔 너무 생활에 가까운 일이다.
굳이 설명하려 들면, 괜히 시시해져서

그냥 웃고 넘긴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 후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몸이 기억하는 편안한 옷.


그 상태로 거리를 걷는 건, 나만의 작은 해방식 이다.
누가 나를 알아볼 일도 없는 이 도시에서 나는 훨씬 자유롭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어깨를 조금 내려놓는 순간,

마음 속 긴장이 톡 하고 터진다.


내 산책은 늘 무계획이다.
쇼윈도 속 옷을 훑어보다가 골목을 돌고,

단골 카페에 앉아 라떼를 한 모금씩 천천히 음미한다.
그 단순한 동선이 하루를 부드럽게 덮는다.


오모테산도의 매력은 겉은 화려해도
골목 안엔 조용한 결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인파 속에서 파도처럼 흘러다니다가도,
코너 하나만 돌면 세상이 툭 하고 멈춘다.
그 순간이 좋다.


어느 날은 히가시야만에서 아이스 모나카를 베어물며

음악을 들으며 걷다 보면 혼자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하고,


탄수화물이 간절한 날엔 산타마리아에서 파스타 한 접시.
그 한 그릇으로 피로와 욕망이 동시에 잠잠해진다.


또 가끔은 담배 냄새 가득한 킷사텐에 앉아

오레 그랏세를 마시며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낸다.
그리고 집에선 태울 향 하나를 골라 사 온다.
그럴 땐 왠지 뭐라도 된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에겐 오모테산도의 매력을 말해보라하면

쇼핑보다 건축이다.
스파이럴 빌딩, 콤데가르송 본점, 프라다 건물.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나무와 그림자,
정교하게 재단된 구조물들.


‘걷고 싶게 만드는 거리’라는 말이 있다면,

여기가 그렇다.


나는 이 길 위에서 조금은 도쿄 사람 같고,
조금은 여행자 같고,

조금은 허세스러운 여자다.
그게 아주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결국,

이 도시는 나를 어떻게든 기분 좋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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