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발로 키운다”는 말, 이제야 알겠다.
첫째를 키울 땐 늘 전쟁 같았다.
울면 어쩔줄 몰라했고 ,
목욕 한 번 시키는 것도, 이유식 한 숟갈 먹이는 것도
왜 그렇게 어렵던지.
유튜브 레시피보며 정성껏 만든 이유식을
입에 넣자마자 ‘퉤’— 뱉어버리면
멘탈이 산산조각 났다.
“이유식 맛이 없나? 내가 간을 잘못했나?”
스스로를 의심하다가,
‘이번엔 꼭 먹이리라’ 결의에 차서 다시 전투 시작.
아이 식사시간이 지나면 부엌은 참혹했다.
죽은 바닥에 흩어지고,
아기 의자엔 이유식이 예술처럼 튀어 있고,
나는 그걸 닦다 말고 한숨을 쉬었다.
딱 하루, 이유식을 안 먹었을 뿐인데
마음은 천 리를 달려 맘카페로 갔다.
‘아이가 이유식을 안 먹어요 ㅠㅠ’
글을 올렸던 나.
지금 생각하면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그땐 몰랐다.
‘내가 얼마나 긴장하며 육아를 하고 있었는지’를.
그런데 둘째를 낳고, 세상이 조금 달라졌다.
“둘째는 발로 키운다”는 말,
그저 웃자고 하는 줄 알았다.
근데 웃긴 게, 그 말이 농담이 아니더라.
둘째가 고래고래 울어도, 별로 당황하지않고
이유식?
안 먹으면 “그래, 안 먹을 수도 있지 뭐.” 하며
이유식 말고 우유먹자~ 하며 기분좋게 분유를 타는 여유.
첫째 때 같았으면 이미 검색창 켜고
“이유식 거부 9개월 아기” 쳤을 거다.
첫째 때는
‘무조건 정량대로 먹여야 한다,
이시간엔 무조건 낮잠 재워야 한다,
울면 바로 달래야 한다’
그 ‘해야 한다’의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렸다면,
둘째 때는 ‘그래도 괜찮다’의 세계에서 산다.
조금 늦어도 괜찮고,
조금 울어도 괜찮다.
첫째는 엄마의 첫 번째 실험작이었다.
모든 게 처음이라, 작은 일에도 흔들렸다.
‘감기 걸리면 어쩌지?’
‘왜이리 말이 느리지?’
걱정을 만들어내는 ‘걱정봇’이었다.
둘째때는 왜이리 다른지.
울음도, 떼도, 잠투정도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로 소화가 된다.
남편 출장 간 날, 혼자 아이 보는 게 세상 제일 무서워
전날부터 덜덜 떨던 나는 이제 어디로 갔을까.
첫째가 넘어졌을 땐
“괜찮아? 다친 데 없어?” 하며 반사적으로 달려갔는데,
둘째가 어디 부딪히면
“아이구 쿵 해써? 괜찮아~.”하고 살짝 쓰담쓰담해준다.
이게 바로 ‘여유’라는 거구나 싶다.
아이를 무조건 지켜줘야 한다는 긴장감 대신,
‘스스로 할 수 있겠지’라는 기다림과 믿음이 자리했다.
첫째 때는 육아가 나를 흔들었고,
둘째 때는 육아가 나를 단련시켰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완벽한 엄마’가 되는 게 아니라,
‘괜찮은 엄마’로 살아가는 게
결국 더 멋진 일이라는 걸.
첫째에게서 배운 사랑으로,
둘째에게는 조금 더 여유롭게 사랑한다.
그래, 발로 키운다 해도 괜찮다.
그 발끝엔 사랑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