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어릴 때부터 가위질을 좋아했다. 뭐든지 오리고 보는 나는 큰일을 쳤다. 엄마가 아끼는 공단 한복을 가위로 자른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남색 한복 치맛자락이 나를 유혹해서 요리조리 이쁘게 모양을 만들어 오리게 했다. 그날 눈물을 쏙 빼고 다시는 함부로 옷에 가위질할 수 없게 혼이 났다. 그래도 가위질은 멈출 수 없었다.
국민학교 시절 친구 아빠가 해외 출장을 많이 가셔서 신기한 장난감이 무척 많았다. 그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마론인형이었다. 17cm 키에 넓이 5cm 정도 되는 사람 인형은 팔과 다리가 길고 허리는 잘록하고 머리는 작고 긴 금발이었다. 곱슬 머리칼을 가진 마론인형이 나도 갖고 싶지만, 그 당시 부잣집 딸들만 가질 수 있었다. 매일 친구 집으로 출근해서 인형 놀이를 했다. 그 집에는 마론인형만 5개 인형 옷도 20가지 넘게 많아서 노는 게 하나도 지겹지 않았다. 나는 마론인형에 홀딱 빠져 꿈에서까지 인형과 놀았다. 친구는 아빠에게 입체 마론인형을 선물 받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제일 오래된 일반 마론인형 하나를 나에게 주었다. 너무 좋아서 눈에 물이 맺혔다. 집에 가서 인형을 꼭 끌어안고 행복에 취해 잤다.
그날부터였다. 나도 친구처럼 인형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싶지만, 부모님께 사달라고 할 수도 없어 학교 근처를 배회 중 옷 공장을 발견하고 거기서 쓰고 남은 자투리 천을 모아놓은 좋은 공터를 발견했다. 기기서 옷감을 수시로 주어와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엉터리로 만들어 입혔다. 점점 옷의 구성요소에 맞게 만들어 입히며 실력은 날로 발전했다. 한 벌의 옷을 완성하기 위해 수십 번을 만들어 실패하고 고치고를 거듭 반복해서 마음에 드는 옷으로 완성했다. 그럼, 인형을 준 친구가 그 옷을 보고 나에게 인형 옷을 주문하고 나는 만들어줬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신나서 오리기와 바느질을 힘들지 모르고 열심히 했다.
친구 덕에 옷을 만들며 바느질 매력에 빠져 살았다. 중학교에 가며 잠시 잊고 살다가 가정 시간에 다시 바느질 묘미에 빠져 대학까지 의상을 전공했다. 그러다 보니 직업 또한 그쪽 일을 하게 됐다. 가위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바느질로 옷을 완성하거나 변화시킨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옷, 가위, 바는 질과 떨어질 수 없는 사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