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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an 28. 2024

못해먹겠다, 다자녀 워킹맘, 살려주세요, 다자녀 워킹맘

다자녀 엄마의 복직 한 달맞이 푸념대잔치

삼둥이 : 2016년생, 첫째(남아), 둘째(남아), 막내(여아)

  

  작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일 년간 육아휴직을 했다. 그리고 올해 1월 1일자로 복직을 했다. 다행히 남편이 올해 반 년간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다. 이제 복직 4주 차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일을 안 한 건 아니지만, 그 시절에는 시댁에 살고 있어 시부모님이 전면적으로 아이들을 돌봐 주셨다. 이제 오롯이 남편과 내가 아이를 보는 입장에서 내가 워킹맘이 되었다. 4주간 다자녀 워킹맘은 어떤 마음과 정신 상태로 살아왔나.      

  

아이들의 상태 - 방학을 맞은 삼둥이들은 아프기 시작했다. 막내 폐렴, 둘째 중이염 등 방학맞이 대환장 감기질환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이 휴직을 안했다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었는가. 다행히 입원할 정도는 아닌 막내는 엄청난 잔기침과 일주일 가까이 떨어지지 않는 열로 부모를 애태우게 했다. 심지어 그 먹쟁이가 먹는 것도 지지부진. 혹시 막내가 입원을 한다면, 첫째와 둘째를 돌보기 위해서 이제 막 복직한 내가 휴가를 내고 방학 중인 아이들을 돌봤어야 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제 만7세. 하루 종일 기저귀를 갈고, 돌봐야할 아이가 아닌데도 이렇게 힘들다. 다자녀가 아기들인 워킹맘은 대체 어떻게 사시나요? 살아지나요?      


엄마-나의 상태는 그야말로 좀비이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4주를 살았는지 모르겠다. 1년 만에 돌아온 직장에서 맡은 업무는 너무 버겁고, 긴장의 연속이다. 이미 나이는 찰 데로 찼는데 아는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너무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고. 뭐 그런 상태다. 평소 신경이 무디고 낙천적인 걸로 알려져 있으며, 나 자신도 그렇게 인정하던 나인데 신경이 가늘어지고, 예민해지기가 끝도 없다. 

  다자녀 워킹맘인 나의 문제는 그거다. 이것도 저것도 어지간히는 하고 잘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일도,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내 자신을 돌보는 것도 어느 정도는 잘 하고 싶다는 거다. 직장에서 일을 미루고 안 하는 돌아이로 알려질 자신이 없다. 아이들을 돌보는 걸 등한시하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도 없다. 그게 나라는 사람이다. 근데 직장생활에서는 이런 성향의 내가 빛도 주목도 받지 못 하지만 묵묵히 성실히 일해야 하는 곳에 배치될 가능성이 많다. 아니 가능성이라니. 늘 그런 곳에서 일했지. 

  이도 저도 잘하고 싶은 나는 그러나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이다. 시간이 없는데다 손이 여물지도 않은 나는 늘 뭔가를 늦게 하기 일쑤이고, 애매한 시간에 퇴근해 TV를 보고 있는 아이들을 잠깐 보다 간신히 씻고 잠든다.

  그러던 와중에 출근 첫 주에 얌전히 있는 내 차가 뒤에서 들이박히는 접촉사고까지 당하자, 머릿속으로 그것만 외쳤다. 멘탈 챙기자. 멘탈 챙기자! 

  야근을 하고 싶지만 삐약대며 아파하는 아이들과 같이 정신이 나간 남편 때문에 야근도 양껏 못 한다. 집에 와서 아이들이 자는 무렵인 10시쯤부터는 여지없이 같이 자게 된다. 몸과 정신이 피곤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런데 직장인으로서의 영혼이 속삭인다. 너는 지금 업무를 숙지하지 못 했고, 이번 주 안에 뭘 해야 해. 그 일정을 잊어버리고 잠이나 자니? 그 속삭임으로 어김 없이 새벽 두, 세시에 일어나는데 그 시간에 업무를 볼 수도 없어, 핸드폰을 좀 보다 다시 잠이 드는 패턴이다. 이렇게 유약했다니! 이렇게 소심했다니! 아이를 낳으면서 업무와 가정을 분리할 수 있게 됐다고 자신했는데! 그것은 쉬운 업무였을 때 하던 헛소리였다. 그렇다. 나는 개복치 중에 개복치이다. 후~ 불기만 해도 스트레스로 어이쿠 하고 명치를 강타 당하고 마는 유약한 동물이다. 슬프게도 오늘 새벽도 깨고 말았다. 이번 주 안에는 꼭 그 업무를 해야 하는데.      


남편의 상태-남편은 직장생활 11년만에 육아휴직을 했다. 그러나 그의 첫 달은 아픈 막내 딸을 위한 열보초 서기, 그리고 지역의 몇 안 되는 아이들이 가는 이비인후과에 일찍 가서 번호표 뽑기로 지난 한 달이었다. 그리고 멘탈이 무너져 혼란스러워 하는 아내에게 조언인척 잔소리하기, 또 집안일 하기로 지나간 한 달이다. 우리 엄마 왈, 김서방이 휴직하니까 집이 깨끗해졌더라. 십 년 간 내가 하는 말은 그거였다. 걱정하기가 하루 일과인 남편의 성격을 아니까, 늘 말했다. 정말 못 참겠으면 휴직해! 누나가 벌게! 허허허. 그러나 지금 누나는 한달도 안 돼 징징대고 있는 것이다. 못 하겠다, 신랑아!   


  그렇다. 아주 오랜만에 받는 스트레스로 샤워를 하는 한달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런 시절이 이어질 예정이다. 내가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해야 할 일은 코앞으로 착착 다가오고, 아이들의 밥때도 착착 다가오고, 밥을 먹고 난 후의 설거지도 그득그득 쌓이고, 아이들이 입은 옷도 무더기로 쌓이는 것이다.     


  도대체 다들 어떻게 사시는 건가요? 다자녀 워킹맘들이여! 꼭 다자녀가 아니어도 워킹맘들! 다들 안녕하신가요? 모두들 야물딱지게 일도 육아도 꽉 잡고 계신가요? 나만 능력 부족으로 이렇게 진흙탕을 밟는 기분으로 사는 건가요? 육아에서도 흑흑흑, 집안일에서도 이런이런, 직장에서도 헐 헐 헐. 이렇게 살지 않으시나요? 언제나 울고 싶은 마음으로 사시나요? 


  이 마음을 부여잡고 일단 로또를 사러 가야겠다. 나의 길은 정녕 그것 뿐인가! 내가 복직을 했어도 남편이 휴직을 했으니 집에 전업이 한 명 있는데도 이렇게 흔들리다니. 

  

  이렇게 두서없는 글을 쓰고 나니 또 점심 때다. 언제나 열심히 하는 것 밖에는 아무 재능 없는 나이니 또 어설픈 점심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주고, 집에 꾸역꾸역 가져온 업무 관련 자료를 들여다 봐야겠다. 그 어떤 날에 나는 오늘의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불쌍했던 인생의 어떤 부분일까, 치열했던 인생의 어떤 부분일까.     


  워킹맘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 힘내요.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어요. 우리는 잘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떤 날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는 잘하고 있어요. 우리는 해내고 있어요. 우리는 잘하고 있어요. 우리는 망치지 않고 있어요. 우리는 열심히 하고 있어요. 우리는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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