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나의 자식 삼둥이들과 그림그리기 대회를 나갔다. 셋 다 나름의 심혈을 기울여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축제를 돌아다녔다. 어머나, 그런데 저기서 꿩만두와 꿩비빔밥을 나눠 주는 게 아닌가. 축제가 열리는 지역이 꿩고기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 이벤트를 하는 것이었다. 꿩비빔밥은 몇 백인분을 한꺼번에 비비는 장관을 보여주며 맛있게 비벼지고 있었다.
화장실에 간 남편을 대신해 삼둥이와 내가 길게 줄을 서서 오래 기다리다 비빔밥과 만두를 받았다. 먹어보니 그냥 산채비빔밥 맛이고 고기만두 맛이었다. 이제 짬뽕도 먹는 삼둥이들 비빔밥을 못 먹겠나. 2학년 삼둥이 어린이들은 무대에서 한복을 입고 노래 부르는 공연자들을 보며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종이그릇에 받아 온 만두와 비빔밥을 우걱우걱 먹어댔다. 이것저것 잘 먹는 삼둥이긴 하지만 비빔밥을 생각보다 잘 먹어서 놀랐다. 나 역시 같이 다리를 흔들며 맛있게 한 끼 때웠다.
이렇게 한 끼 때우는구나! 여간 기쁜 게 아니다. 먹성 좋은 삼둥이는 이제 어른 1인분씩은 먹으니 주말에 이렇게 나오면 한 끼에 오 만원 드는 건 쉽다. 허허허, 이렇게 한끼 때우다니 지역 축제 만세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그릇 하나를 주면서 맛있다고 얼른 먹으라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
“자기야, 나 꿩고기 못 먹어.”
응? 뭐어? 뭘 못 먹어?
“자기야, 이거 꿩 맛 하나도 안 나. 그냥 산채비빔밥 맛이고 고기만두 맛이야. 먹어 봐.”
물론 나도 그 전에 꿩을 먹어본 적이 없으므로 꿩 맛이 나는지 안 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정말 비빔밥과 고기만두맛이었는데! 또 돌아오는 대답.
“어떻게 꿩비빔밥, 꿩만두라고 써있는데 꿩맛이 안 나.”
허허허허허허. 이 녀석아.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는데 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안 되겠니. 저기서 꿩 자를 지웠으면 맛있게 먹었을 거 아니니?
그는 내가 신혼 초에 입이 하도 짧아서 숏입이라고 별명을 지은 적이 있으나, 그 별명을 입에 올리는 걸 아주 싫어하므로 한 번 꾹 참았다.
물론 알고 있다. 비위가 약하고 싶어서 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은. 나처럼 정말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미 남편의 머릿 속에는 산 속을 돌아다니는 꿩이 저 음식에 들어간 것에 입맛이 문을 닫은 것을. 저기 꿩은 진짜 조금 들어갔을 거라고, 꿩고기가 귀하고 비싼 거라는 설득은 갈 곳 없는 설득인 것을. 여기까지가 이성과 지성의 내가 이해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성과 지성의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나의 나불대는 마음은 그렇다. 아우, 그냥 한 끼 대충 먹지. 아우, 유난스러워라. 아니, 만7세 삼둥이 어린이들도 먹는데.
그리하여 우리는 가족 중 1인만 공복인 상태로 축제장을 떠났다. 집에 가는 사이에 축제장을 쏘다니고, 점심을 배부르게 먹은 삼둥이는 딥슬립에 빠졌다. 집에 도착해서도 아이들은 쉽게 깰 거 같지 않았다. 이성과 지성의 나는 아이들이 한참 잘 거 같으니 내가 차에서 아이들과 있을 테니 밥을 먹고 오라고 했다.
차에서 자는 아이들과 대기하며, 친한 친구에게 저간의 사정을 말했다. 아니 흉봤다. 이성과 지성의 친구는 네가 택한 남자니 좀 봐주라고 하더라고. 나는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택할 때는 꿩을 못 먹는지 몰랐다고!!!”
그는 인근 식당에서 돈가스 세트를 야무지게 먹고 돌아왔다. 돼지는 꿩보다 나은가. 돼지는 꿩보다 덜 비위 상하는가!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