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유행인지는 모르겠습지만, 몇 년 전에 ‘자기 주도 학습’이라고 하는 것이 크게 소개가 되고 여기저기서 이와 관련된 학습방법이 나오던 때가 있었다. 스스로 알아서 자기 공부를 하는 자녀를 두는 것은 모든 학부모의 로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자기 주도 학습’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막막한 느낌만 가득했다. 한국 입시교육 시스템에서 학생들에게 자기주도학습을 시키는 것은 마치 사막에서 수영을 가르치는 격이다. 쓸모도 없고 현실성도 없는 생존방법이다. 학교 끝나면 학원 가기 바쁘고 학원 끝나면 다시 숙제하기 바쁜 아이들이 언제 자기 시간이 나서 자기 주도로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으려면 지루하다 느껴질 만큼 남아도는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 대체로 아이들은 지루한 것을 못 참기 때문에, 지루해지면 기를 쓰고 재미있게 놀 방법을 ‘자기 주도적으로’ 찾게 된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점차로 그런 삶의 태도가 확장될 때 스스로 공부할 전략도 세울 수 있게 된다. 노는 시간을 줄여서 공부하는 데에 더 써야 한다는 것은 그래서 틀린 말이다. 충분히 또래 아이들과 놀아본 경험이 자기 주도적인 삶과 공부의 탄탄한 바탕이 된다. 충분히 놀면서 소소한 선택을 하고 크고 작은 결정을 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빈 공간을 만들어 줄 때에만 가능하다. 가족은 하나의 시스템 이어서 누군가가 하던 일을 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 빈 공간을 채울 다른 가족 멤버가 나타나게 되어있다 (Kerr & Bowen, 1988).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부모님이 빈틈을 열어주고 자리를 내어줄 수 있어야 한다. 부모님이 직접 모든 것을 다 하는 주인공의 자리에서 지켜보는 관객의 자리로 내려와야 한다.
청소년 집단상담을 진행할 때 나는 종종 난감하고 어리숙한 표정을 짓는다. 일부러 그런다기보다 진짜로 난감한 상황이 많아서 그렇다. 그리고 솔직하게 청소년들에게 ‘잘 모르겠다. 내가 실수했다. 어떻게 하면 되지?’라고 말한다. 그렇게 내가 청소년의 모든 심리를 아는 전문가의 위치에서 잠시 내려올 때, 아이들이 나 대신 심리 전문가가 된다. 아이들의 책임감과 자율성은 그렇게 길러진다.
아마 이 글을 읽는 학부모님 중에서는 매번 하던 잔소리와 간섭을 그만두고 자유시간을 주면 아이가 아무것도 안 할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장기적인 방향에서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지금부터 아이에게 시간을 줘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펼치고 싶어 하고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Rogers, 1961). 태어날 때부터 삶을 적당히 패배자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우울하고 무기력한 아이도 자신의 꿈을 찾아 이루고 싶어 하는 본능과도 같은 몸부림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 아이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몇 년 전 유행했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대사를 패러디하며 글을 마친다. “어머니, 무엇보다도 아이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참고문헌
Rogers, C. (1961). On Becoming a Person. London Constable. (진정한 사람 되기. 주은선 역. 학지사)
Kerr, M. & Bowen, M. (1988). Family Evaluation. NewYork:Nor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