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왜 코끝으로 오는가. 코끝으로 전해지는 감각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감성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면서 실존적이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영상에 담아 전달할 수 있는 계절은 풍경과 소리로 제한된다.
내 주관적인 계절 감성에 대한 보편적 공감을 불러오기 위해 음악의 힘을 빌리고자 한다. 계절은 코 끝으로 온다더니 말이다. 음악은 감성을 불러오기에쉽고강력한 예술 형식이다. 코끝으로 느꼈던 계절 감성을 음악으로 소환한다. 음악은 사진이나 영상에 비해 비정형적이다. 감상자마다 자신만의심상을 떠 올릴 수 있다. 따라서감상자의 자유와 주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므로,추천해도 될 것 같다는 핑계를 댄다.
가을은 추석즈음 나는 풀내음과 함께 마침내 찾아온다. 어릴 적 성묘 때 가장 짙게 맡을 수 있는 냄새다. 추석 연휴가 주는 안락함만으로도 이미 끝났다. 가을보다 걷기 좋은 계절은 없다. 여름, 겨울과는 달리 옷에 기온보다 취향을 담을 수 있다. 추석 전후의 가을과, 겨울이 오기 전 텅 빈 가을은 다르다. 한 계절임에도 분위기가 나뉜다는 사실도 마음에 든다.
겨울은 계절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 코끝에도 찾아온다. 코끝이 아리니까. 나뭇가지 위에 눈이 쌓은 모습을 창 안에서 바라보는 포근한 향으로 느낄 수 있다. 겨울도 분위기가 둘로 나뉜다. 연말 연초따스하고 아늑한 겨울과 텅 빈 나뭇가지가 적막해 보이는 2월의 겨울은 다르다.
가을이 왔으면 한다. 이 글을 쓰면서 계절별 플레이리스트를 보니 가을 폴더만 119곡이 있고, 나머지 계절곡은 23~71곡 수준이다. 나 가을 좋아했네. 사실 내가 바라지 않아도 어김없이 가을은 온다. 어김없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작지만 확실한 위안을 준다. 불확실함이 가득한 세상에서 기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실이다.가을을 위안 삼아서 미뤄뒀던 산책을 하고싶다.9월에 가까워질수록 회사문을 나 설 때숨을 깊게 들이켠다.
* 표지 사진 : <The north clay castle in fall, size : 2988x5312, model : 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