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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Aug 25. 2024

계절은 코끝으로 온다

어김없이

계절이 왜 코끝으로 오는가. 끝으로 전해지는 감각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감성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면서 실존적이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영상에 담아 전달할 수 있는 계절은 풍경과 소리로 제한된다. 


내 주관적인 계절 감성에 대한 보편적 공감을 불러오기 위해 음악의 힘을 빌리고자 한다. 계절은 코 끝으로 온다더니 말이다. 음악감성을 불러오기에 쉽고 강력한 예술 형식이다. 끝으로 느꼈던 계절 감성을 음악으로 소환한다. 악은 사진이나 영상에 비해 비정형적이다. 감상자마다 자신만의 심상을 떠 올 수 있다. 따라서 감상자의 자유와 주체성을 훼손하지 으므로, 추천해도 될 것 같다는 핑계를 .



: Nujabes의  Aruarian dance

https://youtu.be/vR-UqOPqGzI?si=5VCXzjHVdzHbXP3p

듣는 순간 말랑말랑 나른해진다.

봄날의 나른한 향을 기억한다. 따스한 봄볕과 그보다 아직 차가운 공기의 온도의 간극에는 나른이 있다. 나른한 향 안에는 설렘, 따사로움, 가벼움, 들뜸, 간질거림 섞여있다. 이 감정들은 3월, 4월, 5월을 지나며 비율을 달리하며 각각 다른 봄감성을 만든다.



여름 : 김아름의 선

https://youtu.be/WMHkBCAQEmE?si=jmO0381ZyGe5-cc8

여름밤은 시티팝이다. 그리고 시티팝은 김아름을 위해 존재한다.

낮에 담아뒀던 청량한 바다를 떠올리며 돌아오는 안에는, 시티팝이 흘러나온다. 규칙적으로 스쳐가는 주홍빛 가로등은 적당한 조명이 되어주고, 살짝 창문으로 넘어오는 알맞은 습기로 여름밤 감성이 쭉 유지된다.



가을 : 기리보이의 하루종일

https://youtu.be/YEt_5Fg3PM8?si=bxMf0MG4r6z089_J

밴드 버전도 있지만 그건 여름에 어울린다. 가을엔 오리지널 버전이 어울린다.

가을은 추석즈음 나는 풀내음과 함께 마침내 찾아온다. 어릴 적 성묘 때 가장 짙게 맡을 수 있는 냄새다. 추석 연휴가 주는 안락함만으로도 이미 끝났다. 가을보다 걷기 좋은 계절은 없다. 여름, 겨울과는 달리 옷에 기온보다 취향 담을 수 있다. 추석 전후의 가을과, 겨울이 오기 전 텅 빈 가을은 다르다. 한 계절임에도 분위기가 나뉜다는 사실도 마음에 든다.



겨울 : 심규선의 부디

https://youtu.be/lV0h6954hmA?si=Le8WLn21Js6ihjJm

이 곡은 연말 연초가 한참 지난 겨울과 어울린다.

겨울은 계절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 코끝에도 찾아온다. 코끝이 아리니까. 나뭇가지 위에 눈이 쌓은 모습을 창 안에서 바라보는 포근한 향으로 느낄 수 있다. 겨울도 분위기가 둘로 나뉜다. 연말 연초 따스하고 아늑한 겨울과 텅 빈 나뭇가지가 적막해 보이는 2월의 겨울 다르다.




가을이 왔으면 한다. 이 글을 쓰면서 계절별 플레이리스트를 보니 가을 폴더만 119곡이 있고, 나머지 계절곡은 23~71곡 수준이다. 나 가을 좋아했네. 사실 내가 바라지 않아도 어김없이 가을은 온다. 어김없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작지만 확실한 위안을 준다. 불확실함이 가득한 세상에서 기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실이다. 가을을 위안 삼아 미뤄뒀던 산책을 하고싶다. 9월에 가까워질수록 회사문을 나 설 때 숨을 깊게 들이켠다.

  

* 표지 사진 : <The north clay castle in fall, size : 2988x5312, model : R>

가을의 정북토성, 모델은 나라는 뜻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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