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의 휴직은 시간에 목말랐던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적어도 주중 공부를 마치고 주말엔 잠시 눈 붙일 시간이 생겼으니, 이것만으로도 호사를 누리는 듯 감지덕지했다.
휴직 후, 5월 말 GRE 원정 시험에 이어, 6~7월 바짝 공부해 토플 점수를 따고 8월 초 회사로 복귀했다. 토플 점수에도 회한이 남았지만, 내가 지원하고자 했던 학교의 소위 '안전빵' 점수, 110점을 넘긴 후, 과감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이 시점에 미련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GRE, TOEFL 등 시험 점수를 땄다고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어쩌면 진짜 유학 준비의 시작은 이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귀 후 한 달은 꼬박 업무 캐치업에 열중했다. 팀장님도 '이제 중요한 시험은 마치고 복직했으니, 일에 집중해야지' 하는 눈치셨다. 한 달이 지난 후 9월, 학업계획서 작성 및 제반 서류 준비에 착수했다.
하반기 미국 대학원 지원 과정 총정리
이제 부지런히 학업계획서/에세이(SOP), 추천서 및 관련 서류들을 준비해야, 가을 데드라인에 늦지 않게 미국 대학원에 지원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 대학원 지원 및 에세이 작성법, 추천서 받기, 인터뷰 준비의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 커버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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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교는 몇 개나 지원해야 하나요?
모든 미국 대학원 지원자들이 한 번씩 고민하는 질문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본인은 3개의 학교에만 지원했다. 사실 1순위를 제외한 두 학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원했던 '플랜 B'였고, 내 마음은 일편단심 민들레, 오로지 한 학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국 유학이 대체 뭐길래>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나는 이미 목표로 하는 학교를 정한 상태에서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북극성은 또렷할수록 좋다. 학교를 정하지도 않고 유학 준비를 시작하는 분이 혹시 계시다면, 일단 목표 설정부터 구체적으로 설정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결정이 어렵다면 졸업생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는 것이 가장 좋다. 만나기 어렵다면 '링크드인'을 통해서라도 연락해보자.
본인이 관심을 두었던 학교는 딱 한 군데밖에 없었다. 전공하고자 했던 분야였던, 통합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s, IMC)에서 당시 탑 스쿨이었다. 어차피 사립학교라 장학금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장학금이나, 석/박 통합, 또는 석사 후 박사 과정을 생각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다른 얘기일 수도 있다. 여러 학교에 지원해야 옵션이 많이 생기고, 그중 장학금을 주겠다는 학교도 나타날 수 있다. 함께 공부하던 지인 중에는 무려 30여 개의 학교에 지원한 사람도 있었다. 결국 개인의 상황마다 다르지만, 최대한 'selective' 하게 목표 학교를 설정해 에너지 분산을 막기를 추천드린다. 지원하는 학교에 따라 학업계획서 및 추천서, 기타 서류를 조금씩 다르게 '각색'해야 하고, 지원할 때마다 드는 비용(예: 지원비, 번역비, 공증비, 우편비)도 만만치 않다.
2. GRE보다 더한 복병 - 학업계획서 (SOP)/에세이
어쩌면 GRE보다 더 복병이었던 게 '학업계획서'였다. 퇴근 후 커피숍이나 도서관에 앉아 매일 조금씩 수정해 나갔다. 영어로는 SOP(Statement of Purpose)라고 불리는 학업 계획서는 대학원 지원자의 동기, 경쟁력, 목표 등을 담은 에세이이다. 통상적으로 미국 대학원 에세이(Graduate Admissions Essay)라고 일컫기도 한다. 지원자들은 이미 커트라인에 부합하는 GRE 또는 GMAT, TOEFL 점수를 보유하고 있다. 개인의 차별성은 SOP/에세이, 추천서, 인터뷰에서 가려진다. 칭찬 일색인 추천서는 그렇다 치고, 에세이와 인터뷰가 대학원 합격의 관건이 된다.
학업계획서/에세이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요소는 다음의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1) 나만의 전공/커리어 스토리텔링:흥미로운 에피소드 활용, 데이터로 경력/업적을 수치화해 스토리텔링
2) 대학원 특징 파악:웹사이트, 블로그, 졸업생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학원에서 요구하는 스펙 정확히 파악
3) 자신의 USP(Unique Selling Point) 어필:자신의 장점, 경쟁력을 진실되고 강력하게 어필
이미지 출처: 무한도전 짤 모음 - 자신만의 강점 어필하기
전공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학원 공부는 매일 읽고 쓰는 일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에세이에서 정확한 단어 표현, 문법을 구사하는가도 당연히 평가 대상이 된다. 영어가 원어민에 가까운 수준이 아니라면, 첨삭/편집 지도를 받는 것이 좋다. 다만 첨삭/편집자는 내 전공 분야와 커리어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낫다. 본인의 경우엔 두 분의 첨삭자가 있었다. 내용 면에서는, 내 업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회사 동료분께 피드백을 받았고, 문법/문장 구성 리뷰를 위해 원어민 선생님께 첨삭을 받았다.
<Graduate Admissions Essays> by Donald Asher
나의 부족한 SOP를 선보이는 대신, 좋은 책을 하나 추천드리고 싶다. 오래된 책이지만, 대학원 에세이 책 중 단연코 최고의 고전, <Graduate Admissons Essays, Donald Asher>를 추천드린다. '2012년 4th edition'이 마지막 개정판이다. 많이 읽어야 좋은 글이 나오는 원리가 대학원 지원 에세이에도 적용된다. 퇴근 후 시간 될 때마다 조금씩 읽었다. 이 책에 소개된 이들의 전공 분야는 굉장히 다양하지만, 스토리 구조나 에세이에 쓰기 적합한 표현은 충분히 참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래 에세이 샘플 사진 첨부)
3. 추천서 부탁의 기술
추천서는 보통 2-3개를 제출하게 되는데, 본인의 경우, 학부 교수님, 당시 팀장님, 그리고 동료 과장님께 하나씩, 이렇게 총 세 개의 추천서를 받아 제출했다. 나의 장점이나 성과/업적이 잘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눈 딱 감고 부탁드려야 한다. 이왕 해주기로 마음먹으셨으니 조금만 더 용기를 내자. 나도 대학원에 붙어야 면이 서고, 당신도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학부 교수님께는 5월 스승의 날에 인사드리며,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졸업 후 인사 한번 없다가 어느 날, 추천서를 써달라고 연락하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교수님 추천서가 필요하다면 미리미리 인사드리자. 가을 무렵 다시 한번 교수님을 찾아뵙고, 지원할 학교에 대해 설명드리며 추천서를 부탁드렸다. 몇 가지 키워드를 알려드렸더니, 감사하게도 흔쾌히 추천서를 써서 보내주셨다.
교수님의 추천서는 한국어 원본과 영어로 번역한 버전을 공증받아, 학교에 우편으로 부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추천서 번역은 본인이 직접 한 후, 영어를 잘하는 지인분께 내용 확인 및 첨삭을 받고, 공증원에서는 공증만 받았다.팀장님, 동료분은 처음부터 영어로 써주셔서 공증할 필요가 없었다. 학교마다 요구하는 항목이 다르니 확인하시길 바란다. 국제 우편이므로 시간도 넉넉히 잡아야 한다.
4. 보충 서류 제출: 샘플, 포트폴리오
학교마다 다르지만, SOP와 추천서 외에도, 본인의 성과를 입증하는 샘플, 포트폴리오 등을 추가로 제출할 수 있다. 내가 지원한 학교는'통합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IMC)'라는 실용 학문을 배우는 학교라, 이런 자료가 많을수록 유리했다. 본인의 경우, 홍보 회사에 다니며 작성했던 보도자료, 기고문, 기획기사, 광고 지면 등을 묶어 포트폴리오로 제출했었다. 팀워크로 일했던 것들은 최대한 배제하고 내가 직접 작성하고 계획한 것들로 구성했다.
이렇게 서류 제출을 마치고 1차 심사에 합격하면 '인터뷰'가 잡히게 된다. 서류 제출을 마치고 기다린 시간은 2주에서 1달 정도. 짧지만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고 세 학교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5. 인터뷰 준비 (Interviews)
대학원이든 취업이든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절실함'과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절실한데 어떻게 자신감이 있죠? 절실하면 마음이 불안할 텐데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준비'다. 절실함과 준비가 만나면, '진정성 있는 자신감'이 나온다.
'플랜 B'로 지원한 학교 중, Public Relations (홍보/커뮤니케이션) 전공 학교가 있었는데, 나는 당시 홍보를 석박사 과정까지 들고 파고 싶은 정도로 열정이 있지는 않았다. 당시 하고 싶었던 공부는 브랜드 마케팅, 소비자 데이터 분석에 더 가까웠다. 심층 인터뷰를 하며 교수님은 나의 홍보에 대한 열정을 여러 번 테스트하셨다. 석사로 지원했지만, 박사 과정까지 관심이 있는지도 테스트하시는 것 같았다. 답은 그럴싸하게 했지만, 아마 나의 절실함과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시 꼭 가고 싶었던 1순위 학교(IMC 전공) 인터뷰는 사실 폭망 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팬데믹과 함께 줌 미팅이 일반화되었지만, 당시에는 합격/불합격이 갈리는 인터뷰를 줌으로, 게다가 영어로 하는 것은 매우 챌린징 했다. 인터뷰 연습할 상대가 있다면 줌이나 구글 행아웃과 같은 화상 인터뷰 연습을 꼭 해볼 것을 권한다. 또한 스크립트는 어차피 준비해도 읽지 못하니 (읽으면 부자연스러움), 핵심 내용을 놓치지 않게 토킹 포인트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세 번째 학교에서는 인터뷰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류만 검토해 보고 장학금을 고려해 보겠다는 이메일이 왔다. 관심이 있다고 답장을 했더니, 장학금을 받으려면 절차상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세 학교 모두 준비는 열심히 했다. 절실함의 레벨은 조금씩 달랐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바쁜 수험생을 위해, 다시 한번 요점 정리!
1. 학교 선정 및 지원 (Applications)
1) 목표 설정: 가고 싶은 학교를 먼저 설정한 후, 유학 준비를 시작할 것
2) 미니멀리스트가 되자: 정말 가고 싶은 대학원 TOP 3~TOP 5만 추려 '선택과 집중'할 것
3) 졸업생(Alums) 인터뷰: 학교 정보가 궁금하다면 졸업생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는 것이 가장 좋다. 안되면 이메일 서신으로라도 물어보자. (LinkedIn, 인맥, 학연 동원)
2. 학업계획서(SOP) or 에세이 (Graduate Admissions Essays)
1) 스토리텔링: 나만의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경력/업적을 수치화한 데이터 활용
2) 대학원 특징 및 스펙 파악 : 웹사이트, 블로그, 졸업생과의 인터뷰 등 활용
3) 자신의 USP를 어필: 자신의 장점과 경쟁력을 진실되고 강력하게 어필
3. 추천서 (Letter of Recommendation)
1) 추천서를 부탁드릴 분(교수님, 전 직장 상사, 현 직장 상사, 동료 등)께 미리 알려드려 시간 넉넉히 확보
2) 추천서에 포함되었으면 하는 키워드 공유
3) 내 새끼는 내가 챙긴다: 번역은 내가 직접 하고 원어민 리뷰, 공증은 업체에
4. 보충 서류 제출 (Supporting Materials/Portfolios)
1) 본인의 업적을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샘플/포트폴리오 준비(예: 보도자료, 기고문, 기획기사, 광고 지면)
2) 팀워크 프로젝트는 최대한 배제하고 본인이 직접 작성하고 계획한 자료로 구성
5. 인터뷰 (Interviews)
1) '스크립트'보다 핵심만 정리한 '토킹 포인트' 준비
2) 진정성 있는 자신감: 절실함 + (준비로 무장된) 자신감으로 무장
3) 반드시 화상 회의로 리허설, 기술적인 부분(음질, 화질) 미리 점검
이 모든 것을 끝내면 나의 몫은 끝났다. 이제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시간만 남았다. 이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야 결과를 기다리면서 후회하지 않는다. 남은 기간 동안 기도 수첩을 쓰며 운명의 그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게 비장할 필요도 없었다. 1년 동안 시험을 준비하며 똥배짱이라도 생긴 것인지, 불현듯 '떨어지면 또 하면 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미지 출처: Unsplash, Pixabay, MBC 무한도전 짤 모음
※ <Graduate Admissons Essays>에 수록된 샘플 에세이 사진
Graduate Admissons Essays by Donald Asher - 에세이 샘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