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벽은 문이다' 산문 중 독수리(솔개) 이야기도 지금 나에게 솔깃하다. 우리 인간과 수명이 비슷한 독수리는 30년 정도 산 시점에 높은 산 꼭대기에 둥지를 튼다. 절벽에 자신의 부리를 쳐서 깨뜨리는 아픔의 시간을 보낸다. 부리가 길어 나와 자신의 목을 찌르기 때문이다. 6개월 정도를 먹지도 못하고 견디고 나면 새 부리가 나온다.
이제 그 부리로 자신의 긴 발톱을 모조리 뽑아버린다. 그대로 두면 발톱이 살 속을 파고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다시 새 발톱이 날 때까지 인내의 쓴잔을 마셔야 한다.
새로 난 부리로 화려하게 비상하던 긴 날개를 다 뽑아 버린다. 긴 날개가 무거워 날 수 없기 때문이다. 깃털이 새로 나서 날갯짓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참기 어려운 고통의 날들을 참아내야 한다.
사느냐 죽느냐. 새들의 왕으로 군림하게 해 주었던 날카로운 부리와 순식간에 비상할 수 있었던 화려한 날개, 수많은 동물을 위협했던 발톱은 낡았다. 뽑아 버리지 않는다면 제 살을 파고들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 다시 살아온 세월만큼 살아가기 위해서는 극한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 120세를 살 것이라는 말들이 있지만, 직장에서 물러나는 60이 넘으면 자신의 인생 반은 훌쩍 더 살았다고 할 것이다. 사람은 소속해 있던 공간을 벗어나지 않는 한 다른 공간을 보지 못한다. 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그러다가 문을 나서면 수많은 벽들이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절망한다.
2007년 췌장암으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도 '마지막 수업' 책으로 많은 감명을 준 랜디포시의 말에서 인생의 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벽이 있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벽은 우리가 무언가를 얼마나 진정으로 원하는지 가르쳐준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 앞에서 멈춰 서라는 뜻으로 벽은 있는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시 '벽'에서 말하듯이 이제 그 벽을 망치로 깨는 헛된 짓은 그만두려한다. 꽃으로 타고 오르려고 한다. 두 손바닥을 펴서 쓰다듬어 말랑말랑하게 만들려고 한다. 빵이 있다면 그저 물 한잔과 마시며 먹을 뿐이다. 남는 게 있으면 밖으로 나가 나눠먹을 뿐이다. 그림책 <키오스크>가 생각난다. 좁은 가판대 안에서 살던 올가가 여러가지 벽(난관)을 만나는데 그 벽을 만날 때 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이제 딱딱한 벽이 아니라 말랑말랑해진 벽을 걸어 들어가 해변에서 아이스크림을 팔며 져녁이면 황홀한 석양을 바라보는 행복을 누리게 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