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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이에서 은수로

은수의 1일

by 강시루 Oct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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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8월 22일,

둥둥이에서 은수로


둥둥이가 태어난 후, 간질간질한 기분은 계속 이어졌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 이미 부모가 된 이들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든든하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염세주의자는 아니지만, 우리 부부는 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잘 보는 편이다. 연애시절부터 그런 면에서 말이 잘 통했다. 그 의미가 파수꾼이란 뜻은 아니지만, 2022년 우리가 사는 세상을 긍정적으로만 보진 않았다.


둥둥이가 태어나고 보니 이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 둥둥이가 살아갈 세상이 더 아름다웠으면 한다. 출산 소식을 주변에 전하며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분으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선물도, 축복도 해주신 분들이 정말 많다. 감사한 일이다! 결혼식 때와는 달랐다. 세월이 지나 그런 것도 있겠지만, 둥둥이에게 주는 축복 메시지가 더 감사하게 들려 그런 것 같다.


오늘은 임신 기간 내내, 빠른 어린이집 입학을 위해 벼르고 있던 출생신고를 하는 날이다. 출생신고를 해야 주민등록번호가 나오고, 그럼 어린이집에 조금이라도 일찍 대기를 걸 수 있다. 여러 경로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어린이집 수가 적고 아이에 맞는 곳을 찾기 어려워 저출산에도 어린이집 입소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특히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는 더 어려웠다. 둘 다, 직장 어린이집이 없었기에 국공립 어린이집의 존재는 더 절실했다.


MBTI에서 ‘빅 J(계획형)’, 매사에 매우 계획적인 우리 부부는 아이가 생기자 어린이집 걱정부터 했다. 어린이집 예약 시스템은 시기마다 달라, 이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변 지인들의 증언도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최근에는 출생신고를 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받아야 앱이나 웹사이트를 통해 어린이집에 대기 예약을 걸 수 있다. 맞벌이 부부에게 어린이집은 필수라서 정책적으로 잘 보완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임신 소식을 알자마자, 아이 이름부터 짓기로 했다. 임신의 기쁨과 동시에 육아 단계를 조금이라도 미리 대비해보자는 아주 작은 뜻에서였다. 좋은 이름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집안 어른들께 알리기 전에 이름을 지으려고 했으므로 우리의 고민은 깊었다. 그렇다고 작명소를 찾거나 작명법을 공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고민 끝에 각자 이름에서 한 글자씩 가져오고, 그에 어울리는 이름을 만들기로 했다. 내 성에서 이미 한 자가 들어가므로 아내 이름을 앞뒤로 넣어 다양한 조합을 만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여러 후보 이름을 탐색하기도 했다. 워드프로세서에 아내 이름을 한 자씩 앞뒤로 넣고 다른 글자를 가나다순으로 넣어보고 소리 내 읽어본다. 내 목소리로 읽힌 이름의 음성은 생경한데, 또 익숙하게도 들린다. 아마 예비 엄마, 아빠한테서 한 자씩 떼어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다 최종 후보 이름을 어렵게 둘로 추렸다. 우리는 아이 이름이 튀지 않으면서, 좋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으면 했다. 한글 이름을 먼저 정했기 때문에 일단 각각에 맞는 한자를 찾아보고 선택을 하기로 했다. 이미 부모가 된 주변 지인들에게 작명에 대한 의견을 듣고, 고민한 결과니 이쯤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어린이집 걱정으로 작명을 시작했기에 이름은 출산을 한 달 이상 앞두고 정했다. 그 단계에 맞는 다른 일이 더 있었을 법도 했지만, 모든 일을 일정에 맞춰 할 순 없었다.


최종 이름을 은수로 정하면서, 한자 조합으로 의미를 만들진 않기로 했다. 둥둥이가 태어나 자기가 만들어갈 세상이니, 그 정도 가능성은 열어두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은 태어나 평생 자신의 이름을 가장 자주 듣는다. 따라서 그 이름은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 지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찾아보니 이 관계를 검증한 정량 연구도 있는데 흥미로웠다!). 그만큼 이름은 중요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 자신도 내 이름처럼 살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은수'라는 이름이 둥둥이가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 사람들에게 밤하늘에 아름다운 별들, 은하수를 떠올리게 했으면 좋겠다. 자꾸 속으로 불러보고 소리 내 불러보니 이름을 담은 음성도 깨끗하게 들린다. 은수는 어떤 운을 타고나서 어떻게 살아갈까? 무작위로 떠오르는 생각을 접고, 어린이집 대기 예약을 위해 출생증명서를 받아 주민센터로 향했다. 요즘은 온라인으로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지만, 주민센터를 방문하면 각종 수당을 함께 신청할 수 있다고 해서 직접 찾아갔다.  


월요일 오전, 집 근처 주민센터로 향했다. 이제는 날씨가 제법 선선해져 아침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월요일 아침이라 주민센터는 한산했다. 안내를 받아 출생신고 담당 데스크로 갔다. 서류를 1부 작성해야 했는데, 적어야 할 내용이 생각보다 많았다. 친절하게 안내해 주신 덕분에 1~2분 사이 서류를 작성했다. 그중 이름에 쓰는 한자를 확인하는 단계는 흥미로웠다. 담당 공무원은 한자 한 자, 한 자에 해당하는 모든 인명 한자를 목록으로 출력해 어느 한자를 쓰는지 확인했다. 서류 접수는 신속하게 처리됐고, 이후 기념으로 출력해준 등본을 한 부 받았다.


둥둥이가 은수가 된 순간이다. 둥둥이도 그랬듯, 은수도 이제 익숙해질 것이다. 은수는 둥둥이로 10개월을 엄마 배 속에 있었다. 건강하게 엄마와 함께 자란 둥둥이는 세상의 빛을 봤고, 이제 은수가 됐다. 지난 10개월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그런 순간의 연속이었다. 아내가 아주 힘들게 지낸 시간이라 한편으론 죄책감도 들지만, 은수를 보면 그런 생각이 또 금방 사라졌다. 아내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 믿는다.


이제 은수가 된 지 3일째인 둥둥이는 은수로 건강하게 살아갈 것이다. 부모가 된 이상, 은수가 좋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야겠다는 다짐을 또다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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