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모가 됐어요
22년 9월 2일,
전환기의 산후조리원
먼저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지인들은 모두, 조리원은 천국이라고 했다. 육아를 외주하고, 엄마는 휴식을 취하며 회복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신생아 육아를 외주 할 수 있는 곳이긴 하다. 그러나 이것도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의 선택에 따라 달랐다. 또 엄마의 선택이란 것도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조리원 환경은 중요했다.
특정 조리원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대신, 우리 사회 엄마에게 육아의 짐을 지우는 관습이 많은 조리원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조리원 환경은 사실, 개별 업체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바에 따르면 대동소이했다. 보통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의 인프라, 환경을 제한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용료가 매우 비싼 하이엔드 시설은 예외로 한다.
기본적으로 조리원은 신생아 초기 양육을 외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그러나 육아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수유는 엄마가 주로 해야 해 한계도 분명했다. 모유 수유를 원하면 더 그랬다. 수유 방식 가운데 분유를 제외하면 직수와 유축은 엄마를 갈아 넣어야 했다. 말 그대로 아이가 엄마로부터 에너지를 뺏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유 방식 자체가 엄마를 힘들게 해서다. 반면, 분유는 엄마에게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 결정적 단점이다. 주변 환경은 모유에서 분유로 넘어가는 지극히 개인적 선택에도 영향을 준다. 우리는 수유를 아내 편의에 맞춰하기로 했지만, 진공상태에서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분명 아니었다.
육아 환경, 주변 시선, 내적 고민 등은 엄마를 막다른 길에 이르게 했다. 오히려 조리원은 기존에 통용되는 양육 방식을 강요해 엄마를 더 잘 준비된 양육자로 거듭나게 한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부모세대로부터 받는 압박도 있는데, 내가 비용을 지불하고 선택한 시설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사실 부모도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바로 부모가 되진 않는다. 부모가 된 지 2주 된 나 역시 나 자신을 아빠로 정의하는 데 어색함을 느낀다. 엄마는 아마 더 그럴 것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출산에서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다면 몸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회복 속도와는 별개로 자신을 엄마로 정의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람은 생애주기마다 다른 역할을 하며 새 정체성을 획득한다. 사회에서 수행하는 일정 역할을 통해 그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데, 이에는 물리적으로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부모가 되는 단계에 있는 우리 부부는 생애주기 상 어쩌면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생애주기 변화가 대부분 사회적 역할에 따른 변화라면 출산 후 부모가 되는 것은 여기에 신체, 환경 변화가 동반돼서다.
여성은 임신, 출산에 따른 신체 변화에 가족 단위가 부부에서 부모와 아이로 바뀌는 가정환경 변화도 함께 경험한다. 아무리 임신과 출산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간접경험을 했더라도 이 거대한 변화를 직접 겪으면 모든 것이 새롭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서툴고, 익숙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이를 자신에게 계속 상기시켜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도 부모가 되면서 갖게 된 속박에서 자유롭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이 된 육아가 이미 삼만리다.
어쩌면 조리원은 대변화를 마주하고 있는 우리에게 완충지대일지 모른다. 천국이란 수식어는 다음 단계에 있을 본격 육아에 비해 그렇다는 것으로 읽힌다. 개개인마다 조리원 경험이 다르고, 출산 경력도 달라 여성이 느끼는 차이는 이에 따라서도 다를게 분명하다. 조리원은 앞으로 닥칠 폭풍우를 물적-심적으로 대비할 공간으로 보는 게 더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