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발점에 선 육아
22년 9월 6일,
조리원 퇴소를 앞두고
3주간 조리원 생활도 이제 다음 주면 끝이다. 출퇴근 전후로 조리원에 잠깐 들르는 나는, 조금 분주해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대로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아내는 임신과 출산의 고난을 겪었지만, 출산으로 인한 과실은 내가 주로 얻는 것 같다. 아내는 새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는 메시지를 정상이 아닌 컨디션에서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감동을 오롯이 느끼지 못할 게 뻔했다.
출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병원에 동행하고, 수술실 앞에서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실제 수술이라는 분만 절차를 감수하고, 몸을 회복하는 일은 온전히 아내의 몫이었다. 또 아내는 자신의 몸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갓 태어난 아이를 돌봐야 하는 책임도 졌다. 우리는 신생아 시기를 조리원에서 오래 보내면 아내가 겪을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적어도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는 조리원에서 아이를 보살폈기에 물리적 부담이 조금 줄어든 셈이긴 했다.
그러나 우리는 조리원에서 3주를 보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었다는 점에서 운이 좋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하고 1주를 병실에서 보냈기에 분만 기준으로는 총 4주를 병원과 조리원에 머물렀다. 4주가 꽤 긴 시간이란 점은 아내가 조리원 루틴을 곁에서 보면서 깨달았다. 이와 별개로 출산을 앞둔, 또는 이미 이를 치른 모든 부부가 이를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정부가 저출생으로 출산 자녀에 대한 지원을 꽤 확대한 것도 사실이다. 2022년, 서울 기준으로 200만 원 쿠폰(바우쳐), 70만 원 교통비(일시급), 24개월까지 30만 원의 양육수당을 지원한다. 이처럼 지원책이 많다고 해도 임신과 출산에 수반되는 비용은 부담이 된다. 여기에 예비 부모가 써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계산하면 이는 분명 큰 부담이다.
저출생에 여러 원인이 있지만 상당한 물적, 심적 비용+알파는 아이를 낳고 싶은 부부에게 높은 장애물이다. 출산에 드는 비용이 시작이란 점에서 부담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영아 양육수당이 2023년부터 부모 급여로 0세에서 1세까지 70만 원(2024년부터 100만 원)으로 늘고, 24개월 후에도 양육수당이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부모는 각자 기준에서 양육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지만,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양육을 하든지 자신이 부모로 부족하다는 점을 매 순간 절감해서다.
더 무서운 점은 육아 산업 마케팅이 이를 기가 막히게 건드려 부모, 조부모의 지갑을 연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출산과 육아로 이어지는 아이의 영유아기, 유년기에 부모를 자녀 걱정에 머물게 한다. 사실 자녀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효’는 부모-자녀 사이 이 불안한 연계를 강화해 왔다. 이 경향이 조금은 약해졌다 해도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도리로 여겨진다.
우리 부부는, 과거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길더라도 부모-자녀 관계에도 일정 거리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특히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의존하게 되면, 이로 인한 왜곡된 관계로 서로 피곤해질 것이 분명하다고 봤다. 결혼 전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이런 배경도 있었다. 또 모두 그렇진 않지만, 기성세대가 부모-자식 사이에 끼여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막연하게 그런 삶의 무게를 고려하면 우리도 안락한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조리원 퇴소 후엔 육아가 온전히 우리 부부의 일이 될 거라는 점에서 불안하다. 우리 둘 다, 모든 일에 계획을 세우고 달려들어야 마음이 놓이는 성향이라 더 그랬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출산, 육아 관련 정보를 찾아본 결과는 참담했다. 그간 생애주기에서 여러 번 허들을 넘었지만 이렇게 답이 보이지 않은 적이 없어서다. 책, 유튜브 등을 통해 접한 육아 정보에 따르면 결론은 출산-육아 모두 개별 사례마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누군가, 이럴 땐 어떻게 하고 또 이 경우는 어디를 찾아야 하는 등 모두 맞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문제 해결법을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 이것도 섣부른 결론임이 틀림없다. 아이를 24시간 마주해 본 적이 아직 하루도 없어서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를 못 하고, 문제를 마주한 적이 없어 불안하다.
정보를 찾고 뭔가를 알아 갈수록 알쏭달쏭하다. 주변에선 다 그렇다곤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덤빌 수 없어 답답한 심정이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시간이 흐르면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또 아이를 함께 키울 아내가 믿음직스럽기에 지금은 막연하게 높아만 보이는 허들을 하나하나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바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육아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레이스를 우리 부부가 안정적으로 해내고 있기를 바라본다.